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이 금융 위기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나섰다. 은행 시스템을 유지하고 SVB에 긴급 대출을 실행한다고 밝혔다. 고객이 SVB에 맡긴 돈을 보험 대상 한도와 무관하게 전액 보증하고, 유동성이 부족한 금융기관에 자금도 대출하기로 했다.

이로써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를 촉발시킨 리먼브라더스 사태의 재발 가능성은 크게 줄어들었다. 이번 SVB 파산은 금융 위기 당시 문을 닫은 저축은행 워싱턴뮤추얼 이후 미국에서 역대 두 번째로 큰 규모의 은행 파산이다. 그런 점에서 엄청난 충격파가 닥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위기는 진정되는 분위기지만, 이번 SVB 사태는 전세계 금융 산업의 현실에 심각한 경고음을 울리고 있다. 현재의 금융산업은 금융이 제조업 등 산업 투자의 자금 창구 역할을 하고, 이런 산업 금융이 다시 금융산업을 살찌우는 선순환 구조가 아니기 때문이다. 투자가 금융산업 안에서만 순환하는 폐쇄적인 구조가 심화되고 있는 점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돈 자체가 상품이 되는 것은 금융산업의 불가피한 추세다. 제조업 등 산업 금융은 대규모 설비투자에 묶이기 때문에 자금 회전 속도가 느리고 이윤율도 낮다. 고위험 고수익을 본질로 하는 금융산업 입장에서는 돈놀이에 집중하기 쉽다. 하지만 금융산업의 이런 장점은 위험 요인이기도 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도 이런 금융산업의 특징이 극대화된 데서 기인했다.

이같은 금융산업의 편향은 갈수록 심화되는 제조업 규제에도 원인이 있다. 자본은 노동과 환경, 투자 등과 관련해 규제가 강화되는 분야를 기피하게 된다. 애초부터 투자 회수가 느린 는 제조업의 한계에 더해 불필요한 규제까지 강화되면, 돈은 금융산업 안에서 맴돌게 된다. 게다가 주주 자본주의라는 명분을 내걸고 경제민주화 논리까지 설치면 문제는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이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더욱 심각하다. 87체제 들어 노동운동이 극렬화된 데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주식시장은 기업의 자금 조달 창구가 아니라 유출 창구로 전락했다. 이는 투자 부진으로 이어지고 심각한 양극화와 청년 실업의 원인이 된다. 이번 SVB 파산 사태를 거울삼아 금융산업과 산업 금융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저작권자 © 자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