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구영
정구영

국회가 국민연금 개혁의 ‘공’을 정부로 떠넘기면서 이를 둘러싼 논란은 당분간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전망이다. 하지만 여진(餘震)은 계속되고 있다. 특히 1990년생의 불신과 불만은 현재진행형이다.

1990년생이 특정된 것은 이유가 있다. 국민연금 지급 개시 시점은 출생연도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다. 기금 고갈이 예정된 2055년은 1990년생이 만 65세로 수령 자격을 얻는 해다. 1990년생부터는 국민연금을 한 푼도 못 받게 된다는 말이 나온 배경이다.

하지만 이는 현행 국민연금 체계, 즉 보험료율 9%와 소득대체율 40%가 앞으로도 수십 년간 변화 없이 지속될 경우를 전제로 추정한 것이다. 현재 논의 중인 개혁안이 적용되면 언제든 바뀔 수 있다.

또한 정부는 국민연금법에 따라 5년마다 국민연금 재정수지를 점검하고, 장기재정 전망과 보험료 조정 등이 포함된 운영계획을 짜야 한다. 2055년까지 현재 상황이 그대로 유지될 확률은 크지 않다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국민연금을 한 푼도 못 받는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국민연금공단도 "국민연금은 국가가 운영하는 사회보험제도인 만큼 국가가 존속하는 한 기금이 소진돼도 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복지가 각종 선거 공약의 ‘영순위’가 된 현대정치에서는 더욱 그렇다. 국민연금 지급 중단은 정권의 운명을 걸어야 하는 도박이다.

다만 기금이 고갈되면 재정 방식을 바꿔 운영해야 한다. 지금은 쌓아둔 기금에서 국민연금을 지급하는 적립식이다.

하지만 기금이 고갈되면 건강보험처럼 그 해 걷어 그 해 지급하는 부과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렇게 할 경우 2080년에는 보험료율이 35%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점에서 미래세대의 고통은 더욱 커진다. 국민연금이 다단계 폰지사기와 다를 바 없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재정 방식을 바꿔도 안 되면 국민의 혈세인 국고로 메우게 된다. 현재 건강보험의 경우 전체 보험료 수입의 14%를 국고로 지원하고 있다. 이렇게 하면 다른 선택지보다 욕을 적게 먹을 수 있다. 모두의 부담은 아무의 부담도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대놓고 목적세인 사회보장세를 걷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국가재정의 희생을 전제해야 한다.

미국 같은 기축통화국은 물론 일본 등의 준(準)기축통화국도 자국 통화로 채권을 발행하면 국내 수요 기반이 탄탄한데다 전 세계가 채권을 사준다. 이 때문에 재정적자를 내도 채무불이행에 빠질 가능성이 낮다.

우리나라는 소규모 개방경제 국가다. 대외여건이 나빠져 환율과 수출이 크게 흔들리면 경상수지 적자가 커져 나라 전체가 출렁일 수밖에 없다.

이 같은 경제위기에서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건전한 재정이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 외국자본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환율과 금리가 폭등하던 무렵에도 우리 경제의 버팀목이자 구원투수가 됐다.

국민연금 개혁은 뜨거운 감자이자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다.

윤석열 정부가 자칫 ‘복지 축소’로 인식될 수 있는 정책임에도 국민연금 개혁을 추진하는 것은 재정건전성 때문이다. 반면 문재인 정부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 개혁 논의를 좌초시켰다. 보험료 인상은 국민의 구미(口味)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에 대한 국고 투입과 사회보장세 도입 역시 퍼주기에 이골이 난 좌파 정권이 선호할 만한 카드다. "곳간에 곡식을 쌓아두면 썩는다"는 무식한 궤변을 내뱉을 만큼 재정건전성과는 담을 쌓은 접근이다. 이것이 국민연금 개혁을 대하는 좌우 정권의 차이다.

저작권자 © 자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