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이체방크 프랑크푸르트 본사. /AP=연합
도이체방크 프랑크푸르트 본사. /AP=연합

실리콘밸리은행(SVB)과 크레디트스위스(CS)의 파산 공포가 독일 최대 투자은행인 도이체방크로 번지고 있다. 부도 위험을 나타내는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이 급등하자 시장은 크레디트스위스의 신흥자본증권(AT1)이 휴지조각이 된 악몽을 떠올리며 도이체방크의 주가를 끌어내렸다.

2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독일 프랑크푸르트 증시에서 도이체방크 주가는 지난 24일(현지시간) 장중 한때 15% 가까이 떨어졌다. 도이체방크 주가는 실리콘밸리은행 파산 사태 이후 최근까지 30% 가까이 폭락했으며, 이날도 3일 연속 하락을 기록했다.

이처럼 도이체방크의 주가가 급격한 하락곡선을 그린 것은 이날 5년물 은행채에 대한 CDS 프리미엄이 220bp(1bp=0.01%포인트)까지 치솟은데 따른 여파다. CDS는 채권을 발행한 국가나 기업이 부도가 났을 때 원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 금융파생상품이다. CDS 프리미엄이 높아졌다는 것은 해당 채권의 부도 위험이 커졌다는 의미다.

이처럼 도이체방크의 CDS 프리미엄 급등으로 주가가 폭락하자 시장에서는 크레디트스위스의 AT1이 전액 상각 처리된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앞서 UBS와 크레디트스위스의 인수합병 과정에서 스위스 금융감독청(FINMA)은 크레디트스위스가 발행한 160억 스위스프랑(약 22조3633억원) 규모의 AT1을 상각 처리하며 사실상 가치를 제로(0)로 만들었다.

AT1은 은행 등 금융회사의 건전성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를 대비해 발행하는 후순위 채권으로 일명 ‘코코본드’라고 불린다. 자본비율이 미리 규정된 기준치 이하로 떨어지면 투자자의 동의 없이 즉시 상각 또는 주식으로 전환해 은행의 자본을 늘려주도록 설계됐다. 통상적인 변제 순위를 보면 선순위 채권〉일반 채권 〉후순위 채권〉주식의 순이다. 한마디로 은행이 파산하면 주주가 먼저 손실을 보고, AT1 투자자는 그 다음으로 손실을 보는 구조다.

AT1은 만기가 없거나 매우 길어 정기적으로 이자나 배당을 받는다. 영구채 성격이 있어서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 산정에서 자본으로 인정받는다. 이 때문에 은행 등 금융회사들이 자본 확충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동안 크레디트스위스를 포함한 많은 은행은 AT1을 채권 포트폴리오의 수익률을 높일 수 있는 비교적 안전한 방법으로 홍보해왔다. 지난 2020년 8월 크레디트스위스는 금리 5.625%로 15억 달러 규모의 AT1을 발행했는데, 당시 수요가 발행량을 뛰어넘어 금리를 5.25%로 하향 조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UBS와 크레디트스위스의 인수합병 과정에서 크레디트스위스의 모든 주주는 22.48주당 UBS 1주를 받게 된 반면 AT1 투자자는 아무것도 받지 못해 큰 손실을 입게 됐다. 이에 따라 시장에서는 세계적인 투자은행이 발행한 AT1마저 안전하지 않다는 인식이 퍼진 것이다.

지난 24일 독일의 코메르츠방크는 물론 프랑스의 BNP파리바와 소시에테제네랄 등 주요 은행의 주가가 일제히 하락한 것도 이 때문이다. 반면 비트코인은 이 같은 은행 파산 공포의 ‘나비효과’로 가격이 3만 달러에 육박하고 있다.

사실 올해 초부터 시작된 비트코인 강세는 뜻밖의 현상으로 받아들여졌다.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고, 각국 중앙은행이 그동안 무제한적으로 풀었던 유동성을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회수하면서 암호화폐 시장도 이의 영향을 받아 위축될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트코인은 1월 한 달에만 50% 가까이 오르면서 이 같은 예상을 보기 좋게 깨뜨렸다. 2월에도 전월 대비 상승세를 유지하다가 그동안 상단 저항선으로 작용했던 2만5000달러를 돌파하면서 3월 고점을 2만8000달러까지 높였다. 이 같은 비트코인의 예상 밖 상승은 인플레이션 헤지와 함께 기존 금융시스템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매력이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은 중앙은행의 무제한적 유동성 공급으로 화폐가치가 하락하는 현상이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통화량을 조절하는 주체가 따로 존재하지 않고, 사전에 설정된 알고리즘에 따라 발행량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또 4년에 한 번씩 전체 통화량을 절반으로 줄이는 ‘반감기’를 통해 혹시 발생할 수 있는 인플레이션을 차단한다. 여기에 실리콘밸리은행 파산을 필두로 크레디트스위스 매각 등 기존 금융시스템에 대한 위기감이 고조되자 이에 대한 대안으로서 비트코인이 다시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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