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디트스위스. /AFP=연합
크레디트스위스. /AFP=연합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유럽 크레디트스위스(CS) 매각과 도이체방크 위기, 다시 미국 중소은행 연쇄 파산 우려까지 3주 동안 대서양을 오간 ‘뱅크데믹’ 공포가 잦아드는 분위기다. 뱅크데믹은 은행과 팬데믹의 합성어로 특정 국가에서 발생한 은행 부실이 코로나19 팬데믹처럼 세계 곳곳으로 번질 수 있다는 불안을 담은 신조어다.

일각에서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상 드라이브가 뱅크데믹 덕분에 멈출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상당수 전문가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급한 불만 껐을 뿐 서서히 시스템이 무너지는 ‘슬로모션 위기’에 대비해야 한다는 경고를 내놓고 있다.

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뉴욕증시는 뱅크데믹 공포를 털어내듯 상승세를 보였다.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1.26%,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는 1.44% 올랐다. 나스닥지수도 1.74% 상승했는데, 나스닥지수의 1분기 오름폭은 16.8%로 3년 만에 최대치다. 각국 정부가 일제히 유동성 공급에 나서면서 시장의 패닉이 가라앉은 것이다.

같은 날 미국 상무부가 발표한 2월 개인소비지출(PCE) 가격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5.0%, 전월 대비 0.3% 오르는데 그치면서 1년 반 만에 최소폭의 상승세를 보였다. PCE 가격지수가 시장의 관심을 받는 것은 미 연준이 통화정책 방향을 결정할 때 주로 참고하는 지표이기 때문이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개인소득과 소비지출이 줄었다는 점이다. 2월 개인소득은 전월 대비 0.3% 증가했지만 증가율은 1월의 0.6%보다 현저히 낮다. 고용시장 과열에 따른 임금 상승세는 구조적인 인플레이션 요인 중 하나로 꼽혔는데, 조금씩 완화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소비지출도 0.2% 늘어나는데 그쳤다. 지난 1월 2.0%까지 뛰었다가 가파른 하락곡선을 그린 것이다. 소비는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70%에 달할 정도로 비중이 크다.

이처럼 인플레이션이 잡히고 있다고 볼 만한 지표가 나오면서 미 연준이 기준금리를 동결할 것이란 전망이 고개를 들고 있다. 2일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는 오는 5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미 연준이 기준금리를 현 수준인 연 4.75~5.0%로 동결할 확률을 51.6%로 집계했다. 한 달 전 0%였던 상황이 급변한 것이다.

특히 월가에서는 뱅크데믹이라는 화(禍)가 기준금리 동결이라는 복이 됐다는 말도 나온다. 고금리에 따른 유동성 위기가 은행권에 확산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미 연준이 기준금리 인상에 브레이크를 밟음으로써 과도한 통화긴축과 경기침체를 막을 것이란 낙관론이 주요 골자다.

하지만 더 위험한 상황이 올 것이라는 반론도 이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미 연준이 뱅크런 위기에 몰린 은행들에게 지원한 1528억 달러와 긴급자금 119억 달러가 불씨가 될 수 있다. 급한 불을 끄겠다고 푼 돈이 물가를 올리는 악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투자자문사 RIA어드바이스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증시를 중심으로 낙관론이 확산되고 있지만 인플레이션은 목표치 2%대에 근접조차 하지 못했고, 뱅크데믹도 진행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또 다른 유형의 위험인 슬로모션 위기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여전히 위험선상에 있는 미국 중소은행이 많기 때문이다. 아미트 세루 스탠퍼드대 교수팀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금리 인상 여파로 실리콘밸리은행보다 더 큰 자산가치 손실률을 기록 중인 미국 은행이 전체의 11%인 500여 곳으로 추정되고 있다. 특히 상업용 부동산시장 대출의 70%를 담당하는 중소은행이 약한 고리로 거론된다. 고금리와 코로나19로 공실률이 높아지고, 빌딩 가격이 하락하는 직격탄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높은 수익의 더 안전한 투자처를 찾으려는 은행 고객의 예금 인출도 불안 요인이다. 은행에서 돈을 찾지 못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발생한 것이 1차 예금 이동이라면 2차는 예금이 머니마켓펀드(MMF) 등으로 빠져나가면서 가시화되고 있다. 여기에 모바일 뱅킹 발달과 소셜미디어 확산으로 불안심리가 전파되면 빠르게 뱅크런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은 또 하나의 악재다. 미국의 모바일 뱅킹 이용 비중은 2017년 52%에서 2021년 66%로 14%포인트나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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