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로부터 윤석열(국민의힘), 이재명(더불어민주당), 안철수(국민의당) 대선후보. /연합
좌로부터 윤석열(국민의힘), 이재명(더불어민주당), 안철수(국민의당) 대선후보. /연합
‘여권은 부패로 망하고 야권은 분열로 망한다’는 말은 정치권의 오래된 금언이다. 특히나 권력이 집중된 대한민국의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정권을 쥔 여당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야권이 힘을 합쳐도 역부족인 상황이 부지기수다.

그래서 선거때마다 이슈로 떠오르는 것이 ‘야권 단일화’다. 서로의 정치적 입장은 다르지만, 여권 후보를 당선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공통분모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 4·7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야권 단일화의 위력을 확실하게 보여준 선거였다.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는 득표율 57.5%를 기록하며 39.18%에 그친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제치고 서울시장에 당선됐다.

투표용지에 이름이 인쇄되기까지 했던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선거일을 2주 앞두고 사퇴하며 오세훈 후보로 단일화가 이뤄진 것이 결정적이었다. 지난 2017년 19대 대선,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2020년 21대 총선까지 내리 3연패를 겪은 야권이 반전의 계기를 만들어 낸 힘이 바로 단일화에서 나왔다. 이처럼 후보 단일화는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한 가장 강력한 수단이다. 반대로 말하면 야권이든 여권이든 분열이 가장 큰 장애가 된다는 뜻이다.

잠시 시계를 돌려 1987년으로 돌아가보자.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기 위해 야권인사들을 중심으로 4월 통일민주당이 창당된다. 총재에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 추대됐으며, 김대중 전 대통령도 창당발기인에 이름을 올렸다. 더구나 6월 항쟁의 결과로 대통령 직선제로 개헌하는 6·29 선언까지 이끌어내는 성과를 거뒀다. 군사정권의 종식까지는 얼마 남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김대중의 동교동계가 김영삼으로의 후보 단일화에 반대하며 탈당, 평화민주당을 창당하며 야권이 분열되고 말았다. 결국 13대 대선은 겨우 36.64%의 득표율로 노태우 후보가 당선되며 야권은 5년간 더 군사정권을 연장시켜준 꼴이 되고 말았다. 물론 단일화가 됐다고 하더라도 노태우 후보가 당선됐을 수도 있지만, 야권의 분열이 노태우 후보에게 ‘어부지리’로 작용한 것은 분명하다.

1997년 15대 대선의 사례도 살펴보자. 이 사례는 드물게도 여권의 분열이 ‘경선불복’이라는 사태로 이어지며 정권을 넘겨준 선거였다. 당시 여당이었던 신한국당에서 내세운 구호가 ‘이인제를 찍으면 김대중이 당선된다’ 였다. 단순한 네거티브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경선에 불복하고 독자 출마한 이인제 후보가 19.2%를 득표했고 1위인 김대중 후보가 40.3%, 2위인 이회창 후보가 38.7% 로 득표율 차이 1.6%, 표차는 39만557표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말 그대로 이인제의 경선 불복이 당시 신한국당에 치명타를 가한 셈이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보자. 내년 대선의 현재 판세는 2강(윤석열·이재명), 1중(안철수), 1약(심상정) 구도다. 윤석열·이재명 두 후보가 모두 35~40% 선에서 지지도를 형성하고 있다. 실제 지지도는 물론, 유권자의 사표방지 심리까지 고려했을 때 안철수 후보와 심상정 후보의 당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안철수 후보 역시 이를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남은 4개월여의 시간 동안 판세가 어떻게 변할 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지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도 확인했듯이 1중에 위치한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가 정권교체를 향한 핵심 과제라는 점은 야권에서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부분이다.

안 후보가 원하는 바는 명확하다. 승자독식구조를 벗어나 협치에 대한 가능성을 제시해달라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단일화를 통해 정권교체에 기여하면 그 기여분을 확실하게 인정해달라는 것이다.
저작권자 © 자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