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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수출국기구 플러스(OPEC+)가 하루 116만 배럴의 추가 감산에 나서면서 사우디아라비아의 탈(脫)미국 노선이 본격화하고 있다. 이로 인해 국제유가는 배럴당 100달러를 웃돌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의 압둘라지즈 이븐 사우드 국왕을 만나 원유와 천연가스를 포함하는 ‘석유 안보’의 토대를 마련한 이후 70여년 동안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양국의 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으며, 이는 곧장 원유 시장에 투영되고 있다.

한국은행도 지난 16일 내놓은 ‘향후 국제유가 상승 가능성에 대한 평가’에서 국제유가의 상방 압력이 높을 것으로 전망했다. 대(對)러시아 제재 이후 원유 교역 구조가 재편되는 과정에서 러시아 원유 공급의 불확실성이 국제유가를 끌어올리는 요인이 될 것이란 분석이다. 러시아의 원유 생산량은 하루 1100만 배럴로 전 세계의 11% 수준이다.

일각에서는 대안으로 셰일가스를 거론하고 있다. OPEC+ 소속이 아닌 미국의 셰일가스 생산과 수출이 한동안 국제유가를 낮추는 것은 물론 중동 산유국에 대한 의존도 역시 감소시킨 바 있기 때문이다.

셰일가스는 석유가 생성될 수 있는 근원암, 즉 셰일층에서 생산하는 천연가스다. 난방과 발전용으로 쓰이는 메탄 70~90%, 석유화학 원료인 에탄 5%, 액화석유가스(LPG) 제조에 쓰이는 콘덴세이트 5~25%로 구성돼 있다. 유전이나 가스전에서 채굴하는 기존의 천연가스와 화학적 성분이 동일하다.

17일 주요 외신에 따르면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OPEC+의 추가 감산으로 원유 공급량이 올해 3월부터 12월까지 하루 40만 배럴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앞서 지난달에는 올해 3분기 글로벌 원유 시장이 공급 부족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이 같은 상황은 원유 감산을 주도하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의 갈등에서 비롯된 영향이 크다. 양국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셰일가스 혁명과 이란 핵합의 타결로 관계가 점차 소원해졌다. 이란 핵합의는 이란의 핵 프로그램을 평화적 목적으로 한정하고, 이에 상응해 경제제재를 해제한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양국 관계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 다시 회복될 여지가 보였다. 하지만 인권 외교를 중시하는 조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관계가 더욱 악화됐다. 사우디아라비아계 언론인이자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였던 자말 카슈끄지 피살 배후로 미국이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를 지목한 것이 계기가 됐다.

사우디아라비아가 독자 노선을 걷고 있는 또 다른 이유는 수천억 달러가 투입되는 ‘비전 2030 프로젝트’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로서는 글로벌 경기침체 영향으로 국제유가가 배럴당 80달러 이하로 떨어져 재정적자가 발생하는 경우를 경계해야 하는 상황이다.

셰일가스 대안론이 부상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 2009~2019년 사이 미국의 셰일가스 생산량은 하루 1300만 배럴에 달하며 국제유가를 끌어내렸다. 하지만 최근 들어 미국의 셰일가스 생산은 쇠락의 길을 걷고 있으며, 앞으로의 전망도 불투명한 상태다.

실제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미국의 셰일가스 생산은 줄어들기 시작해 최근에는 유정을 폐쇄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2019년 730만 달러였던 평균 시추 가격은 올해 900만 달러로 치솟았지만 셰일가스 가격은 하락해 채산성이 떨어지고 있다. 시추공 1곳당 생산량도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유럽에서 논의되고 있는 셰일가스 생산도 지지부진한 상태다. 독일 연방지질자원연구소(BGR)의 2013년 연구에 따르면 유럽에서 기술적으로 추출 가능한 셰일가스 매장량은 14조㎥로 추정되고 있다. 하지만 환경오염 논란과 테스트 유정에서 나온 저조한 생산량으로 투자자가 이탈하고 있다. 엑슨모빌, 셰브론, 토탈에너지는 폴란드에 계획했던 셰일가스 생산 프로젝트를 포기했다.

그동안 세계 에너지시장은 중동, 미국, 러시아가 삼분해왔다. 하지만 미국의 셰일가스 생산 감소와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를 빼면 사우디아라비아의 영향력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셰일가스로 구축됐던 신(新) 석유질서 대신 사우디아라비아 주도의 구(舊) 석유질서로 되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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