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위안화. /연합
중국 위안화. /연합

중국이 위안화를 기축통화로 키우려는 대장정에 나섰다. 금융이 실물을 주도하는 시대에 기축통화는 경제 패권을 최종적으로 누가 쥐느냐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현재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는 기축통화는 달러다. 세계 외환거래의 85%가 달러로 이뤄지고, 전 세계에서 발행되는 해외채권 가운데 50% 이상이 달러 표시 채권이다. 각국 중앙은행 역시 외환보유고의 60% 이상을 달러 표시 자산으로 운용하고 있다.

기축통화를 보유한 국가는 유동성 위기에 처할 염려가 없다. 모자라면 인쇄기로 찍으면 그만이다. 고질적인 재정적자에도 미국 경제가 잘 굴러가는 이유다. 재정에 펑크가 나면 국채를 발행해서 돈을 조달하면 된다. 미국은 무제한의 마이너스통장을 굴리는 세계 유일의 나라다.

중국이 위안화 굴기에 속도를 내는 것 역시 이와 무관치 않다. 첨단기술을 비롯한 모든 패권은 금융이 받쳐주지 못하면 의도했던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 중국이 미국 국채 보유고를 줄이는 대신 금 보유량을 늘리고 있는 것도 이의 일환이다.

23일 주요 외신에 따르면 최근 들어 위안화를 국제 결제 수단으로 택하는 나라가 늘고 있다. 원전 건설대금을 위안화로 결제키로 한 방글라데시가 대표적이다.

방글라데시는 러시아 국영 원자력 기업인 로사톰과 함께 126억5000만 달러(약 16조6879억원) 규모의 원전을 건설 중이며, 이 가운데 90%를 러시아에서 빌린 차관으로 충당하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서방 진영의 제재로 전 세계 결제망인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서 배제된 상태다. SWIFT를 통해 달러 송금을 하지 못하는 상황인 만큼 차선책으로 위안화 결제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중국과 브라질은 지난 14일 정상회담을 통해 위안화와 헤알화를 이용한 거래를 확대하기로 했다. 앞서 양국은 지난달 브라질 기업들이 SWIFT 대신 중국에서 만든 결제망 국경간위안화지급시스템(CIPS)을 이용하는 것에도 뜻을 모았다. 러시아는 이미 SWIFT에서 퇴출당한 후 무역 및 금융 결제 수단으로 위안화 사용을 크게 늘린 상태다.

이뿐만이 아니다. ‘페트로 달러’ 체제의 중심 국가였던 사우디아라비아도 탈(脫)달러를 선언했다. 페트로 달러 체제는 지난 1984년 사우디아라비아가 미국과의 원유 결제를 달러로만 하기로 합의한 것을 말한다. 대부분의 나라가 원유를 거래해야하는 만큼 페트로 달러 체제는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를 유지하는데 일조했다.

일부 국가들이 이처럼 위안화 결제에 호응하면서 기축통화로서의 달러 지위가 흔들리고 있다는 경고음이 나오고 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최근 뉴욕에서 열린 미국외교협회 행사에서 달러의 지위 악화를 경고했다. 라가르드 총재는 "지정학적 긴장이 계속 고조되면 다극화가 심화할 수 있다"면서 "달러가 국제 결제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을 당연히 여겨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는 달러 패권이 흔들릴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CIPS를 통한 위안화 결제액은 2021년 4분기 21조3000억 위안에서 지난해 4분기 26조1000억 위안으로 증가했다. 특히 위안화 굴기는 중국의 지속적인 미국 국채 보유고 축소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미국 재무부의 2월 해외자본수지 통계에 따르면 중국의 미국 국채 보유고는 8488억 달러(약 1120조원)로 전월 대비 106억 달러 감소했다. 이는 2010년 5월 이후 13년 만의 최저 수준이다. 반면 금 보유량은 큰 폭으로 늘고 있다. 인민은행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기준 중국의 금 보유량은 2068톤이다. 이는 전월 대비 0.9% 증가한 것으로 지난 5개월 간 추가적으로 늘어난 보유량만 120톤에 달한다.

하지만 위안화가 당장 달러를 대체하거나 달러가 기축통화로서의 지위를 잃을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 대체적인 관측이다. 지난 2월 무역 결제에서 차지하는 위안화 비중은 4.5%로 지난해 8월보다 2배 이상 늘었지만 여전히 달러에 비하면 미약한 수준이다.

통상 다른 나라의 통화가 달러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외국인 투자에 개방된 경제와 채권시장, 시장 환율의 수용, 법치에 대한 신뢰 등이 필요하다. 이 같은 조건을 공산주의 국가의 통화인 위안화가 갖추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다만 위안화가 러시아처럼 제재받는 나라를 중심으로 국제 결제에서 야금야금 영토를 넓혀갈 것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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