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서울 용산구 HDC현대산업개발 본사에서 고용노동부와 경찰 관계자들이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 신축 아파트 공사현장 붕괴사고와 관련해 압수수색을 진행하고 있다. /연합
19일 서울 용산구 HDC현대산업개발 본사에서 고용노동부와 경찰 관계자들이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 신축 아파트 공사현장 붕괴사고와 관련해 압수수색을 진행하고 있다. /연합

HDC현대산업개발(HDC현산)의 광주 화정아이파크 신축 아파트 공사장 붕괴사고가 9일째를 맞은 가운데 사고 원인과 책임자 규명을 위한 수사가 속도를 내고 있다. 현장 관계자들의 입건에 이어 HDC현산 본사에도 ‘사정의 칼날’이 겨눠졌다. 특히 당정은 강력한 처벌을 원하는 여론을 빌미로 건설업계가 반대해온 ‘건설안전특별법’이라는 추가 규제법안 제정까지 밀어붙일 태세다.

광주경찰청 화정아이파크 붕괴사고 수사본부는 19일 고용노동부와 합동으로 서울 HDC현산 본사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했다. 현재 사고 원인이 무지보(데크 플레이트) 공법상 문제, 동바리(지지대) 미설치, 콘크리트 양생 불량 등 부실공사로 초점이 맞춰지고 있어 이번에 압수된 자료들은 향후 시공사인 HDC현산에 책임을 물을 중요 증거가 될 전망이다.

수사본부 관계자는 "아직 수사 초기 단계라 구체적 수사 방향을 공개할 수는 없다"며 "붕괴사고 책임이 HDC현산 본사에 있는지 철저히 규명해 엄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여론 역시 원청인 HDC현산에 책임을 묻고 처벌해야 한다는 기류다. 지난해 6월 광주 학동 철거현장 붕괴사고 이후 7개월 만에 또다시 사고를 냈다는 점이 싸늘한 여론에 냉기를 더하며 HDC현산은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 17일 정몽규 회장이 직접 나서 HDC현산 회장직 사퇴와 사고 아파트의 철거 후 재시공 카드를 내놨지만 ‘HDC현산 보이콧’ 열기를 식히기에는 힘이 달리는 모습이다. 실제 광주 북구 운암3단지를 비롯해 HDC현산과 계약한 재건축 조합들이 계약해지에 나섰고, 이미 착공된 곳에서는 안전진단 요구가 거세다. 집값 하락을 우려해 건설 예정 아파트에서 ‘아이파크’ 브랜드명을 빼달라는 요청도 제기됐다.

건설업계는 숨죽이며 수사 상황을 지켜보면서도 HDC현산의 사법적 책임과 관련해 ‘국민정서법’이 발동되지 않을지 우려하고 있다. 헌법보다 상위법이라는 국민정서법이 적용되면 꿰맞추기식 수사에 의한 과도한 처벌이 예상되고, 그 여파는 업계 전체로 확산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한 걱정이 아니다.

정 회장의 사퇴 발표가 있던 날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은 "법이 규정한 가장 강한 패널티(처벌)가 주어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등록말소’를 언급했다. 건설업 등록말소는 HDC현산의 건설업계 퇴출을 뜻한다.

건설산업기본법상 ‘고의·과실로 부실하게 시공해 시설물의 구조상 주요 부분에 중대한 손괴를 일으켜 공중(公衆)의 위험을 발생시킨 경우’ 국토교통부 임의로 등록말소가 가능하다. 지난 1994년 성수대교 붕괴사고 당시 동아건설산업에 단 한번 적용됐다.

하지만 법조계는 과거 판례상 등록말소는 어려울 것이라는 분위기다. 대신 ‘1년 영업정지’가 최대 처벌 수위가 될 것으로 조심스레 예측한다. HDC현산이 시공능력평가 9위(평가액 5조6103억원)의 대형 건설사라 퇴출시 협력사를 포함한 사회적 파장이 상당하다는 점도 이 같은 전망에 힘을 싣고 있다. 한 로펌 관계자는 "등록말소가 처분되면 장기간 법정 공방이 뒤따를 것"이라며 "과거 동아건설산업도 9년여의 공방 끝에 등록말소가 취소됐던 만큼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만 초래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에 건설업계는 노 장관의 강경 발언을 다른 각도로 해석하고 있다. 국회에 계류 중인 건설안전특별법의 통과를 밀어붙이기 위한 ‘겁주기’라는 것이다. 실제 노 장관은 연일 이 법안의 조속한 통과를 강조하고 있으며, 당정협의에도 착수했다. 건설안전특별법은 발주·설계·시공·감리 등 모든 공사 참여 주체에 안전 책임을 부과하고, 처벌할 수 있도록 한 것이 골자다. 건설업계는 제정에 줄곧 반대해왔다. 건설산업기본법, 산업안전보건법, 중대재해처벌법(이달 27일 시행)에 더한 ‘옥상옥’ 규제라는 이유에서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중대재해처벌법 만으로도 이미 초비상 상황인데, 건설안전특별법까지 통과되면 온갖 중복 규제로 손발이 묶이게 된다"며 "건설업계가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상황을 악용해 등록말소라는 공포탄으로 침묵을 강요하며 규제 법안을 통과시키려는 시도를 즉각 멈춰야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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