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현지시간)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좌)을 비롯한 의회 지도부를 만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우). /UPI=연합
16일(현지시간)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좌)을 비롯한 의회 지도부를 만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우). /UPI=연합

미국이 이르면 다음달 초 사상 초유의 국가 채무불이행(디폴트) 사태를 맞을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조 바이든 대통령과 의회 지도부가 16일(현지시간) 다시 만나 부채 한도 문제를 논의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이날 회동은 지난 9일에 이어 두 번째다.

협상의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해 시간에 쫓기게 된 바이든 대통령은 당초 예정했던 해외순방 일정 일부를 전격 취소했다. 목전에 닥친 디폴트 사태를 막으려는 고육지책이지만 부채한도라는 내치 문제가 정상외교 일정에 직격탄으로 작용하는 선례를 남기게 됐다.

민주당과 공화당 간 부채한도 협상 실패로 미국이 디폴트에 빠지면, 즉 미국 재무부가 발행한 국채의 이자 또는 원금을 지급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글로벌 금융시장은 ‘패닉’에 빠질 공산이 크다. 세계 최강의 경제대국 미국이 부도를 낸다는 것은 ‘무위험 자산’으로 세계 모든 금융자산의 기반이 되는 미국 국채의 위상과 신뢰가 뿌리부터 흔들리게 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17일 외신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당초 19∼21일까지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차 일본을 방문한 후 파푸아뉴기니와 호주를 방문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달 1일로 예상되는 디폴트 시점인 ‘X-데이트’가 2주 앞으로 다가왔는데도 공화당과의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지자 이들 국가에 대한 방문 일정을 취소한 것이다.

매년 1조 달러 안팎의 재정적자를 내는 미국은 연방정부의 부채한도를 의회가 승인하도록 하는 시스템을 갖고 있다. 부채한도 협상은 바로 이 같은 연방정부의 부채한도 증액을 둘러싼 민주당과 공화당의 줄다리기를 말한다. 미국 의회는 지난 1960년 이후 78차례에 걸친 증액으로 부채한도를 상향해왔다. 연방정부는 세수 등 수입 부족분을 재무부 국채 발행으로 메우는데, 지난 30년간 부채가 8배가량 늘어 국내총생산(GDP)의 120%에 달한다.

미국 재무부는 최근 의회가 설정한 31조3810억 달러(약 4경2000조원)의 부채한도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이는 연방정부가 더는 돈을 빌리지 못한다는 뜻으로 현재의 상태가 이어져 기존 부채의 이자를 지급하지 못하면 미국은 사상 최초로 국가 부도에 이르게 된다.

국채 금리가 3%면 4경2000조원의 부채에 대한 이자는 1260조원, 4%면 1680조원이다. 5%면 2100조원의 이자를 매년 지출해야 한다. 이는 2023회계연도 미국 예산의 23%에 해당하는 것이다. 현재 미국의 기준금리는 5.00~5.25%다.

부채한도의 증액은 하원에서만 할 수 있다. 문제는 민주당이 집권여당이지만 공화당이 하원을 잡고 있다는 것이다. 만일 양당의 협상이 합의점을 찾지 못해 디폴트가 발생할 경우 주식, 채권, 파생상품 등 글로벌 금융시장 전반에 재앙적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실제 제닛 옐런 재무장관은 "미국의 국채시장은 세계 금융체계를 지탱하는 기반"이라며 "미국이 국채 이자와 원금을 제때 갚지 못하면 글로벌 금융시장이 붕괴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패닉이 일어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옐런 장관은 또 디폴트 사태가 발생하면 미국인 800만명 이상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는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의 예상치를 언급하면서 "대공황처럼 심각한 경기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부채한도 협상이 벼랑 끝 대치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의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트럼프 전 대통령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바이든 행정부가 지출 삭감을 거부하면 디폴트로 가봐야 한다"며 강경 대응을 주문했고, 바이든 대통령은 핵심 성과로 자부하는 반도체 보조금 등 주요 사업의 예산을 줄일 수 없는 상황이다.

시장에서는 결국 민주당과 공화당이 합의해 디폴트를 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협상이 길어질수록 금융시장의 변동성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일본에서 열린 G7 재무장관 회의에서도 매년 부채를 두고 반복되는 정치 리스크가 미국과 달러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킨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G7 재무장관 회의에 초대된 스리 물랴니 인드라와티 인도네시아 재무장관은 "협상이 해결 가능한 반복적 게임일 뿐인지, 아니면 미국의 부채 위기에 얽히지 않고 단절하는 법을 배워야 할지 전 세계가 묻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자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