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빈 OPEC 본사. /AP=연합
오스트리아 빈 OPEC 본사. /AP=연합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비(非)OPEC 산유국의 협의체인 OPEC 플러스(OPEC+)가 내년 말까지 감산 기간을 연장하기로 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하루 100만 배럴의 자발적 감산 방침을 밝혔지만 OPEC+ 차원의 추가 감산 합의에는 실패했다.

이처럼 OPEC+ 차원의 추가 감산은 하지 않고 사우디아라비아만 자발적 감산에 들어간 것은 산유국들의 입장이 엇갈려 내홍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회원국에 원유 생산을 줄이도록 압력을 가하고 있지만 저항이 만만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역시 엄청난 양의 값싼 원유를 시장에 쏟아내고 있어 국제유가를 부양하려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발목을 잡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경제구조 개편 계획인 ‘비전 2030’을 위해 배럴당 80달러 이상의 국제유가 유지가 당면 과제다. 하지만 최근 국제유가는 글로벌 경기둔화 우려로 배럴당 70달러 안팎에 머물고 있다. 특히 중국의 경제지표가 악화되면서 수요 감소에 따른 국제유가의 하방 압력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OPEC+는 4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정례 장관급 회의 후 성명을 통해 지난 4월 결정한 감산 기간을 올해 말에서 내년 말까지 연장한다고 밝혔다. 이번 회의에서는 하루 100만 배럴의 추가 감산분을 회원국간 배분하는 안건이 논의됐지만 일부 산유국의 반발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이에 사우디아라비아가 7월부터 자발적으로 하루 100만 배럴의 원유 생산을 더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추가 감산분을 사우디아라비아가 떠안는 모양새다.

앞서 OPEC+는 지난해 10월 하루 200만 배럴 감산에 합의한데 이어 올해 4월에는 하루 116만 배럴의 추가 감산을 발표한 바 있다. 러시아는 3월에 50만 배럴의 감산을 단행했다. 이번에 사우디아라비아가 하루 100만 배럴의 자발적 감산을 발표함에 따라 총 감산량은 하루 466만 배럴에 달할 전망이다. 이는 전 세계 수요량의 4.5% 수준이다.

세계 최대 원유 수출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자발적 감산 소식에 국제유가는 장중 급등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상승 폭을 반납하고 있다. 5일 아시아 거래시장에서 8월물 브렌트유는 장중 한때 3.4% 오른 배럴당 78.73달러를 찍었지만 76달러선으로 내려왔다. 7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도 장중 한때 4.6% 오른 75.06달러를 기록했지만 72달러선까지 하락했다.

OPEC+는 전 세계 원유 생산량의 40%를 차지하고 있다. 이로 인해 OPEC+의 감산 결정은 국제유가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최근에는 약발이 먹히지 않고 있다. 실제 OPEC+가 추가 감산을 발표한 지난 4월 2일 WTI는 배럴당 83.26달러까지 치솟았지만 불과 한 달만인 지난달 4일 68.56달러까지 떨어졌다.

당초 국제유가는 중국의 리오프닝 효과로 원유 수요가 급증하는 반면 산유국의 감산으로 공급은 축소될 것이라는 전망 속에 연말에는 배럴당 100달러까지 오를 것이라는 관측이 있었다. 하지만 중국의 경제지표가 지지부진한 탓에 5월 한 달 동안 국제유가는 11.32% 하락했다. 이는 지난해 9월 이후 가장 큰 낙폭이다.

올해 중국의 1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전년 동기 대비 4.5%를 기록했다. 하지만 최근의 경제지표는 중국 경제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4월 소매판매 증가율이 전월 대비 0.5%에 불과하다는 점, 같은 달 청년실업률이 20%를 넘어섰다는 점이 대표적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0년 이상 중국 성장의 원동력이 된 부동산 붐과 정부의 과잉투자가 끝나고, 이에 따른 막대한 부채가 중국 경제의 위기 요인이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실제 지난 2012~2022년 사이 미국의 국가부채는 25조 달러 늘어난 반면 중국의 국가부채는 37조 달러(약 4경9000조원) 증가했다. S&P글로벌 분석에 따르면 중국 지방정부의 3분의 2는 중앙정부가 설정한 부채한도를 넘길 위험에 처해 있다.

달러가치가 2개월 만에 최고치로 상승한 것도 국제유가의 하락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원유 구매 대금은 대부분 달러로 결제되기 때문이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하반기 브렌트유와 WTI 가격을 각각 78달러, 73달러로 전망하고 있다. 우리 경제에 고유가로 인한 물가 불안과 무역수지 악화 가능성은 크지 않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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