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월 미국 연준 의장. /EPA=연합
파월 미국 연준 의장. /EPA=연합

글로벌 인플레이션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3%대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기록하는 등 비교적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국은행의 발빠른 기준금리 인상이 높은 변동금리 대출 비중과 맞물리면서 물가 오름세를 둔화시키는데 상당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를 이끄는 제롬 파월 의장에 대한 미국인의 신뢰도는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코로나19의 특수성을 간과한 채 인플레이션을 일시적 현상으로 평가절하한 것은 물론 뒤늦게 단기간, 그리고 큰 폭으로 기준금리를 인상함으로써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안을 야기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미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성적표가 엇갈리고 있는 셈이다.

지난 12일(현지시간) 뉴욕증시는 1년여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마감했다.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가 전장보다 0.56%,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는 0.93% 올랐다.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는 1.53% 뛰었다. S&P 500 지수와 나스닥 지수는 지난해 4월 21일 이후 13개월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이는 미 연준이 14일(현지시간) 기준금리를 동결할 것이라는 관측이 투자자들의 낙관론을 뒷받침한 결과로 분석되고 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기준금리 선물시장의 투자자 역시 동결 확률을 77%로 보고 있다. 하지만 미 연준의 일부 인사는 이번에 기준금리 인상을 한차례 중단하더라도 이것이 긴축통화정책의 종료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통화정책과 관련한 미 연준의 행보가 여전히 오리무중인 셈이다.

이에 비해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은 나름 선방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4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발표한 35개 회원국 가운데 3%대 이하를 기록한 곳은 3.7%의 우리나라를 포함해 5개국에 불과하다. 미국 4.9%, 프랑스 5.9%, 독일 7.2%, 영국 7.8%, 이탈리아 8.2% 등 선진국 대부분은 여전히 고물가에 신음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물가 상승률이 OECD 내에서도 비교적 빠르게 안정된 것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우선 한국은행이 적시에 기준금리 인상을 시작한데다 속도 역시 무난했던 점이 꼽힌다. 역설적으로 우리나라의 높은 변동금리 대출 비중도 긴축통화정책의 효과가 빠르게 나타나는데 일조했다. 지난해 예금은행 대출 잔액 기준으로 우리나라 가계의 변동금리 대출 비중이 75%, 기업은 65%에 달해 기준금리 인상이 곧바로 디레버리징과 함께 물가 상승 압력 둔화로 연결됐다는 분석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미 연준, 특히 수장인 파월 의장에 대한 미국인의 신뢰도는 바닥 수준이다. 갤럽이 지난달 9일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 파월 의장에 대해 ‘매우’ 또는 ‘적당히’ 신뢰한다는 응답자 비율은 36%에 그쳤다. 이는 갤럽이 미 연준 의장의 신뢰도 조사를 시작한 지난 2001년 이후 가장 낮은 것이다.

미 연준은 코로나19가 미국과 유럽으로 확산되던 2020년 3월 3일 연 1.50~1.75%이던 기준금리를 1.00~1.25%, 같은 달 15일에는 다시 0.00~0.25%로 인하하는 ‘빅 컷’을 단행했다. 경기부양을 위해 국채 및 주택저당증권(MBS) 매입을 통한 7000억 달러(약 891조원) 규모의 양적완화 프로그램도 내놓았다. 이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투입된 6000억 달러보다 많은 것이다. 유동성 공급→금리 하락→총수요 증가→실물경기 회복이라는 전통적 방식의 경기 회복을 염두에 둔 조치였다.

하지만 시중에 자금을 풀어도 봉쇄 조치인 록다운으로 소비가 제한돼 효과가 크지 않았다. 반면 2021년 백신 보급으로 세계 경제가 빠르게 회복되기 시작하면서 물가가 급속히 올랐다. 같은 해 6월 미국 생산자물가지수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7.3% 오르면서 2010년 11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도 13년 만에 최고치인 5.4%에 달했다.

미 연준이 기준금리 인상에 나선 것은 인플레이션이 세계적으로 확산한 2022년 3월이다. 이후 네 차례 연속 자이언트스텝을 포함해 10회나 기준금리를 올렸다. 하지만 코로나19의 복합 위기적 특성을 간과한 채 제로금리와 무제한의 양적완화로 인플레이션을 촉발했고, 이마저 늑장대응으로 물가도 잡지 못하는 ‘패착’의 연속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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