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원근
송원근

아들의 취미는 ‘먹는 거’, 특기는 ‘많이 먹는 거’다. 나이는 10살, 초등학교 3학년이다. 애 엄마에 따르면, 같은 학교 엄마들로부터 아들이 음식을 잘 먹어 좋겠다란 얘기를 종종 듣는다고 한다. 나 역시 아들이 잘 먹는 모습을 보며 흐뭇해진 마음으로 스트레스를 날린다. 며칠 전 퇴근 무렵만 빼면 그렇다는 얘기다. 그날은 느닷없이 홍어회가 먹고 싶어 식당에 들러 홍어삼합을 포장해 집으로 갔다. 10살짜리 아들에게 물어보니 저녁을 이미 먹었다고 했다. 속으로 ‘다행이다’ 싶어 포장해온 홍어삼합을 640mm 소주 한 병과 함께 보기좋게 식탁에 쫙 깔았는데, 그 10살짜리 아들녀석이 음식 향기를 맡고 대번에 식탁으로 달려왔다. "아들, 넌 이거 못먹어"라고 다독였지만 10살짜리 아들은 식탐을 감추지 않았다. "왜 못 먹어? 먹으면 안돼?"라고 반문하는데 마땅한 대응책이 생각나지 않았다. "냄새가 심하거든"이라고 궁색한 답변을 건넸지만 10살짜리 아들은 괘념치 않겠다는 눈빛이었다. ‘큰일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대(大)자로 사올걸 괜히 소(小)자로 사왔구나’. 삼겹살은 바로 집 밖으로 나가면 3분 거리 정육점에서 살 수 있지만, 자칫 아들이 특기를 발휘해 홍어회가 동나면? 그걸 파는 가게까진 20분 넘게 걸어가야 했다. 아들이 약 3초간 본인 앞에 놓인 이 신메뉴를 먹을까 말까 고민하는 사이 내 머릿속 역시 복잡해졌다.

"먹어볼게". 10살짜리 판사가 망치를 들었다. 굴복할 수밖에. 초조해진 마음에 얼굴이 홍어만큼 붉어졌지만 나는 삼합을 먹는 방법을 내가 배운 대로 알려줘야 했다. "홍어하고 고기하고 김치하고 세 개를 같이 먹어서 삼합이야." 김치와 삼겹살을 밖으로 두고 그 사이에 홍어를 배치했다. 아들의 혀가 홍어를 느끼는 것은 처음이므로 나름 아들을 배려한 배치였다. 아무리 상대가 아들이라지만 이 와중에 배려심이라니. 부성애도 모성애 못지않다고 새삼 느꼈다.

‘설마 홍어까지야 먹겠어?’ 하지만 인생사가 늘 그렇듯 안 좋은 예감은 현실이 된다.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그렇게 아들은 삼합을 흡입했다. "이제 그만 먹을게". 이 말이 떨어질 때까지 아들과 나는 아무런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이내 한숨을 돌렸던 건, 그가 남긴 홍어회가 당초 우려보다 많았기 때문. 최초 식탁에 풀어낸 홍어회의 대략 절반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정도면 소주 한 병 안주로는 모자라지 않다고 느꼈다. 부자(父子) 간에 홍어회로 얼굴 붉힐 일은 다행히 생기지 않았다는 얘기다.

문득 홍어의 원산지가 궁금해졌다. 한때 칠레산 홍어가 주로 유통됐다던데 요즘은 어떨까. ‘식당 주인한테 물어볼걸 그랬나’. 소주 잔을 기울이며 포털에서 ‘홍어 원산지’를 검색해봤다. 2021년 8월 12일자 보도가 눈에 띄었다. ‘흑산도 홍어 아니면 돈 안 받는다더니, 알고보니 일본산’이란 제목의 기사였다. 내용인즉, 흑산도 홍어만 판다고 홍보했던 한 음식점이 무려 4년이나 일본산 홍어를 섞어 팔았다는 거였다. 아, 아들과 내가 먹은 홍어가 일본산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잠깐만, 그런데 일본산이라니. 핵폐수를 먹고 자란 홍어일 수도 있다는 것인가. 나만 먹었다면 몰라도 귀한 내 아들까지 이 방사능 덩어리를 ‘흡입’하게 했다는 말인가. 기사를 자세히 들여다봤다. ‘바이든 날리면’ M사 보도였다. "경기도는 다만 일본산 수산물에서 방사능 수치는 모두 기준치 이내였다고 밝혔습니다"라고 써 있었다. 당시 경기지사는 이재명 님. 시선을 돌렸더니 엄마와 함께 학교숙제를 풀고 있던 아들과 눈이 잠깐 마주쳤다. "아빠, 홍어 잘 먹었어"라고 미소짓는 듯했다. "아들, 다음엔 대(大)자로 사올게. 네 동생 임신한 엄마도 한 젓가락 해야지". 삼합을 즐길 줄 아는 10살 아들과 뱃속 둘째 아들에게 나는 그렇게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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