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오전 서울 중구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현황판에 원/엔 환율이 표시돼 있다.원/엔 재정환율이 이날 한때 800원대로 내려가는 등 8년 만에 가장 심한 엔저 현상이 나타남에 따라 자동차 등 일본과 여전히 경합 관계에 있는 분야의 수출 기업들은 달갑지 않은 상황을 맞게 됐다. /연합
지난 19일 오전 서울 중구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현황판에 원/엔 환율이 표시돼 있다.원/엔 재정환율이 이날 한때 800원대로 내려가는 등 8년 만에 가장 심한 엔저 현상이 나타남에 따라 자동차 등 일본과 여전히 경합 관계에 있는 분야의 수출 기업들은 달갑지 않은 상황을 맞게 됐다. /연합

최근 일본 경제가 ‘잃어버린 30년’을 딛고 부활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모든 경제지표가 펄펄 끓어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닛케이225지수는 이달 들어 지난 13일 33년 만에 3만3000선을 돌파했다. 부동산 가격도 도쿄를 중심으로 뚜렷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올해 1분기 경제성장률은 0.7%를 기록했는데, 이를 연으로 환산하면 2.7%에 달한다. ‘제로 성장’에 익숙한 일본으로서는 흥분할만한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아베노믹스’가 드디어 결실을 보고 있다는 낙관론도 나오고 있다.

물가상승률 역시 3%대로 올라 고질병인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는 것 아니냐는 기대를 낳고 있다. 이는 소득·이익 증가→소비·투자 회복→경기침체 탈출의 선순환에 들어설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는 초저금리와 역대급 엔저 등 금융완화정책의 산물로 일본 경제의 본격 반등에는 여전히 걸림돌이 많다는 시각도 많다.

26일 주요 외신에 따르면 닛케이지수는 지난 19일 기준으로 지난해 말 대비 27.9% 올랐다. 이는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 상승률 14.8%의 2배 가까운 것이다. 특히 올들어 닛케이지수는 주요 7개국(G7) 대표지수 중 최고 상승률을 기록 중이다. 영국과 캐나다의 주가 상승률이 1~2%대에 불과한 것과 대비된다.

오랜 침체기에 빠졌던 부동산시장 역시 활기를 찾고 있다. 지난 3월 수도권 신축 맨션의 평균 가격은 1억4360만엔으로 1973년 조사 시작 이후 처음으로 1억엔을 돌파했다. 또한 도쿄 23구의 70㎡짜리 구축 맨션 평균 가격은 2000년대 들어 처음으로 7000만엔을 넘어섰다. 지난 1999년의 3475만엔 대비 2배가 넘는다.

훈풍은 고용시장에도 불고 있다. 지난 4월 기준 일본의 실업률은 2.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가운데 가장 낮다. 후생노동성 발표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 대졸자 취업률은 97.3%에 달한다. 사실상 완전고용이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특히 일본에서는 올해를 만성적인 디플레이션에서 탈출하는 변곡점으로 보는 시각이 늘고 있다. 실제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8월 이후 9개월 연속 3% 이상에서 유지되고 있다. 지난 1991년 버블 붕괴 이후 30여년 동안 못 보던 풍경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주요 경제지표를 끌어올리고 있는 초저금리부터 ‘함정’으로 작용할 수 있다. 물가가 급등해도 금리를 인상해 돈줄을 조일 수 없기 때문이다. 일본은 그동안 경기 부양을 위해 재정지출을 늘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256%로 선진국 중 가장 높다. 그 돈을 메우기 위해 막대한 국채를 발행했고, 일본은행(BOJ)이 절반인 530조엔을 떠안았다. 일본은행이 금리를 올리면 국채 가격이 급락해 대규모 평가손이 불가피하고, 정부의 이자부담도 크게 늘어난다. 금리를 인상하기 어려운 구조다.

엔저도 뜨거운 감자다. 통화가치는 한 나라의 펀더멘털을 반영하는 만큼 통화 약세는 그만큼 국력이 약화됐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실제 일본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대만에 밀렸고, 근로자 평균 임금도 G7 중 최하위다.

더구나 엔저에도 불구하고 1분기 수출은 4.2% 감소했다. 글로벌 교역량이 줄어든 영향이 크지만 기업의 가격경쟁력도 시원치 않다는 방증이다. 여기에 제조업의 해외생산 비중이 1998년 10%에서 2020년 24%로 늘어 엔저로 인한 가격효과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지난 5월 엔화의 실질실효환율은 76.2(2020년=100)로 전달보다 2%가량 하락했다. 이는 일본이 변동환율제를 이행한 1973년 이후 가장 낮은 것이다. 실질실효환율은 여러 통화에 대한 종합적 구매력을 보여주는 지표다.

특히 엔저는 수입물가의 상승을 통해 가계와 기업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일본은 3%대의 물가상승률을 디플레이션에서의 탈출 시그널로 보고 있지만 이는 ‘양날의 검’이다. 자칫 국민을 가난으로 몰고 가는 ‘고물가의 덫’에 빠질 수 있다. ‘나쁜 엔저’인 셈이다.

일본은 2021년 기준 65세 이상 인구가 29%에 달할 만큼 고령화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다. 내수 전망이 어둡다. 일본 경제가 본격 반등하고 있다고 보기에는 걸림돌이 너무 많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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