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명신
임명신

금년 6월은 주한중국대사의 "비상식적 도발적 언행"으로 시끄러웠던 계절로 기억될 것 같다. 재작년 7월 중앙일보 기고문 ‘중한관계는 한미관계의 부속품이 아니다’도 불쾌한 먼 과거 기억들을 불러냈었다. 당시 보수파 대권주자의 외교기조를 들이받았을 때보다 더 조급해진 느낌이다. 이들 사태의 본질은 한 외교관의 돌출언행이 아니라 중국 특유의 자연·인문 지리와 역사가 키워낸 발상임을 인식했으면 한다. 이 심원한 보편적 심태(心態)는 직설적 표현을 하느냐 마느먀의 문제에 불과하다.

중국의 이웃으로 살아가야 할 숙명에 잘 대처하자는 얘기지 결코 혐오발언이 아니다. 중국의 그림자에 불편과 위기를 감지한 일반 시민들에 비해 오피니언 리더들은 느긋해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차이나 인사이드 아웃’ 인식이 절실하다. 이승만 건국대통령의 영어저작 ‘재팬 인사이드 아웃’의 번역판 제목을 빌어 ‘중국내막기’나 ‘중국의 가면을 벗기다’로 칭해도 좋다. 일본의 진주만 공습 6개월 전 출간돼 예언서적 위상을 얻은 ‘재팬 인사이드 아웃’ 유명세와 권위가 노망명객 이승만의 초인적 저력을 도와 대한민국 탄생을 이끌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의 문명적 속살, 세계 최고 정보력의 국가도 이 유구한 문화심리 양상을 우리만큼 체감했을 리 없다. 중국에겐 손님을 반기는 개방적 ‘하오커’(好客) 기질, 은자(隱者)의 폐쇄성, ‘아큐’적 정신승리와 기회주의가 혼재한다. 그것들이 어우러진 온갖 중국드라마 속 권모술수의 스케일과 잔혹성,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한자’야말로 그 모든 것의 상징이다. 이 심오하고 매력적인 ‘뜻글자’는 구어로 소통 불가능한 인구적 다양함 거대함이 낳은 불가피성의 결과지만, 3천 몇백년 발전과정에서 무수한 부족 종족 민족의 개성을 삼켜버렸다. 한자문명의 중심에 진입하면 하나같이 고유의 언어·문화도 정체성도 잃고 한족으로 동화된다.

필리핀과 한반도 지배를 피차 양해한 카츠라-태프트 밀약, 워싱턴DC의 명물 벚꽃축제가 110여년 전 일본이 선사한 수천그루 벚나무 덕분이라는 사실 등 미-일 사이엔 일본개항 이래 끈끈한 우호의 역사가 있었다. 항일 무장투쟁을 이승만이 ‘당분간’ 만류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1930년대 일본의 중국진출이 전면전으로 비화했음에도 서구는 천왕제 군국주의 본질에 무지한 채 경제제재를 가했을 뿐이다. ‘재팬 인사이드 아웃’ 저술은 조선-왜(倭) 관계사를 알고 유학에 정통하며 기독교와 학술을 통해 서구근대의 핵심을 체득한 지식인이었기에 이뤄진 작업이었다. 이 시대 ‘차이나 인사이드 아웃’ 역시 한국지식인의 세계사적 사명이다.

부채·인구구조 등으로 중국이 힘 빠진다 해서 안전한 게 아니다. 강할 땐 궁극적으로 상대를 녹여버리고, 약할 땐 다방면의 인해전술이 구사된다. 중화민국 시절 ‘일제 하 조선’ 뉴스를 접하며 "우리 제후국이었는데···" 운운 중국인들에 루쉰(1881~1936)이 절망감을 표한 바 있다. 루쉰을 말하지 않고 근대중국을 논하기 어렵건만, 시진핑 시대 들어 교과서에서 퇴출되는 분위기다. 관련 컨텐츠 또한 크게 줄었다. 평생 중국의 전근대성과 격투한 루쉰과 현 중국의 ‘애국주의’는 불화화음이다. 루쉰의 ‘아큐’가 일깨우는 자화상도 거북할 수밖에 없다.

미국이 한국을 ‘미국의 51번째 주’로 만들 가능성은 희박한 반면, 중국에겐 ‘한국성(省)’ 내지 ‘한반도 자치구’ 모두 자연스럽다. 위구르·티베트 자치구가 어떤 대접을 받아 왔나, 특정 정치적 이념적 색안경을 끼지 않는 한 요즘 세상에 모르기 어렵다. 베이징이 수도가 된 지 750여년, 인접한 한반도에서 독립국가로 살아 남은 것은 역사의 필연 우연이 겹친 기연(奇緣)이다. 영원히 지속되리란 보장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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