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원근
송원근

생떼같은 아들을 잃은 애통함 앞에 어떤 위로의 말씀과 보상이 족할까? 그 원통함을 공감하는 많은 국민들에게 해병대원 부모로서 품격을 보여주며 슬픔을 애써 감춘 면모 앞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다. 언론인이란 구실을 들어 감히 순직 장병의 부모께 ‘품격 운운’하는 것이 결례일까 두렵다. 다만 본보 편집국 모든 구성원을 대신해 인사를 올리는 것이라면 혜량을 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전례없는 폭우로 국민이 심각한 피해를 입어 군이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고인이 된 채수근 해병대 상병은 지난 19일 경북 예천군 내성천에서 폭우와 산사태로 실종된 주민 수색작전 도중 순직했다. 당시 모든 언론과 국민들은 군에 대한 질타를 쏟아냈다. 왜 수색대원에게 구명조끼조차 입히지 않았는가? 작전 중인 군인이 왜 인근 지형지물의 상황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병력을 투입했는가? 나중에 알려졌지만 해병대에는 수변 지역 실종자 수색작전 간에 구명조끼 착용 등 대민지원 형태별 매뉴얼이 구체적으로 없다고 한다.

그런데 채수근 상병 부모는 해병대에 쏟아지는 화살을 끝내 뒤로 했다. 그 위에 올라타지 않았다. ‘왜 구명조끼를 입히지 않았나’란 탄식을 했지만 누구에게도 아들의 생명값을 요구하지 않았다. 지난 22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거행된 채수근 상병 안장식 후 국민들에게 보낸 화답 편지는 이를 본 모든 국민들을 숙연하게 했다. 당신들은 "전 국민의 관심과 위로 덕분에 장례를 잘 치를 수 있었습니다"라며 "진심 어린 국민 여러분들의 마음을 잊지 않고 가슴 깊이 간직하겠습니다"라고 오히려 국민들을 달랬다.

당신들은 해병대와 그 지휘계통에 책임을 따져 묻지 않았다. 오히려 사령관과 관계자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했다. "신속하게 보국훈장을 추서해주셔서 수근이가 국가유공자로서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있도록 조치해주신 보훈 관계당국 여러분께도 깊은 감사를 드린다"라며 "끝까지 우리 아이 수근이 마지막 가는 길에 함께해주신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님을 비롯한 장병 여러분들과 유가족 심리치유를 지원해주신 119대원, 해병대 출신 전우회 등 장례를 무사히 치를 수 있게 도와주신 수많은 관계자분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라고 했다.

오히려 아들을 떠나보낸 해병대를 응원했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수근이가 사랑했던 해병대에서 철저한 원인 규명을 통해 다시는 이같이 비통한 일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근본대책을 마련해 주시기를 기대합니다"라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안전한 임무 환경과 장비들을 갖추는 등 대책을 마련해서 ‘역시 해병대는 다르다’는 걸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게 해주실 것을 간절하게 부탁드립니다"라고, "국민과 함께 해병대를 응원하며 해병대가 더욱 발전해나가는 모습을 항상 지켜보겠습니다"라고 연신 해병대를 지지했다.

편지의 말미에는 "정말 원하는 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수근이가 이 자리에 살아서 같이 있다면 여한이 없겠다는 심정뿐"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 대목을 읽다가 가슴이 서늘해졌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과 슬픔, 그리고 분노, 애통함, 원망 이 모든 감정을 조용히 드러냈다. 이것은 "나의 아픔은 내가 가지고 갈 테니, 더 이상 다른 군인들과 그 가족들을 아프게 말라"는 메시지로 읽혔다.

사람들은 과거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크고 작은 사고의 기억을 떠올리며, 채수근 상병 부모의 의연함과 비교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비교 자체가 오히려 이 부모의 명예와 품격에 어울리지 않는 듯하다. 채수근 상병이 천국에서 부모님과 해병대를 지켜주리라, 그렇게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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