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상하이 시장의 한 상인. /EPA=연합
중국 상하이 시장의 한 상인. /EPA=연합

세계 2위 경제대국 중국에 디플레이션의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미국과 유럽 등 전 세계 주요국이 인플레이션 때문에 시름이 깊어지고 있는 것과 정반대 양상이다. 그만큼 중국의 경기침체가 심상치 않다는 의미다.

디플레이션은 금리 인상으로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는 인플레이션보다 더 치명적이고 구조적이다. 경기침체 속 물가 하락을 의미하는 디플레이션은 이미 중국에서 정치적으로 민감한 주제가 된 상태다.

코로나19 방역조치 해제 이후 빠른 회복을 기대했던 중국 경제가 이렇게 부진한 것은 무엇보다 내수 침체가 원인으로 꼽힌다. 부동산 등 자산가격 하락으로 가계 소비와 기업 투자가 얼어붙었고, 중국 정부도 막대한 부채 탓에 획기적인 재정정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중국의 기업부채 증가를 주도하고 있는 부동산 기업 부채 총액은 지난 2012년 26조5000억 위안에서 2021년 91조 위안(약 1경6645조원)으로 64조5000억 위안이나 불어났다. 중국 지방정부의 부채도 시한폭탄이다. 중국 지방정부의 부채 규모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32% 수준인 40조 위안으로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에 비해 10%포인트나 상승했다. 이것도 ‘숨겨진 부채’는 제외한 것이다.

중국 인민은행은 경기부양을 위해 지난 3월 은행 지급준비율을 인하하고, 6월에는 사실상의 기준금리인 대출우대금리(LPR)를 10개월 만에 전격적으로 내렸지만 중국 경제는 연초보다 둔화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지난 2분기 경제성장률이 6.3%로 리오프닝에 따른 시장 전망치 7.3%를 크게 밑돈 것이 대표적이다. 시중에 돈이 풀려도 가계 소비는 물론 기업 투자가 늘지 않는 ‘유동성 함정’에 빠진 것이다.

14일 주요 외신에 따르면 중국 국가통계국(NBS)이 지난 9일 발표한 7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0.3%다.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1년 2월 이후 다시 마이너스(-)로 돌아서면서 2년 5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부진한 소비는 중국 경제에 치명적이다. 중국 정부는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수출보다 내수에 초점을 맞춘 경제발전 전략을 취해왔다. 중국의 내수시장은 GDP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올해 상반기 소비 부문의 성장 기여도는 77.2%에 달한다. 14억명의 인구가 떠받치는 내수에 빨간불이 들어온 것이다.

7월 생산자물가지수(PPI) 상승률도 부진한 수요 탓에 -4.4%를 기록하며 10개월 연속 하락했다. 중국의 CPI와 PPI 상승률이 동반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2020년 11월 이후 2년 8개월 만이다. 광범위한 부문에 걸쳐 가격 하락이 지속되면 소비자들은 더 싼 가격을 기다리며 구매를 미루게 되고, 이로 인해 경제활동은 더욱 위축된다. 기업 역시 생존을 위해 가격을 계속 인하할 수밖에 없어 매출과 이익 감소로 이어지고, 이는 투자와 고용을 줄이는 요인이 된다.

중국 경제의 또 다른 성장 동력인 수출도 비상이다. 중국 해관총서에 따르면 7월 수출액은 2817억6000만 달러로 전년 동월 대비 14.5% 줄었는데, 이는 3년 5개월 만의 최대 감소 폭이다. 글로벌 수요 침체 와중에 미국과의 무역전쟁으로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중국의 7월 수입은 2011억6000만 달러로 1년 전과 비교해 12.4% 감소했다. 이로써 월간 수입은 지난해 10월 -0.7% 이래 9개월째 마이너스를 기록하게 됐으며, 7월 수치는 2020년 5월의 -16.7% 이래 가장 낮은 것이다. 소비 부진 앞에서는 ‘세계의 시장’으로 자부하는 중국도 어쩔 수 없는 셈이다.

중국 정부는 지난달 19일 ‘민간경제 발전·성장 촉진에 관한 의견’을 발표했다. 민간기업에게 자금조달 등 경영환경과 관련해 국영기업에 준하는 지원을 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이달 6일에는 국가세무총국이 민간기업 대상의 세금우대 정책을 내놓았다. 국영기업 위주의 조세우대 혜택을 민간기업에게도 적용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경제 비관론이 커지면서 가계는 소비 대신 저축을 늘리고 있고, 기업 투자 역시 지지부진하다. 유동성 함정의 덫에 걸린 것이다. 특히 민간경제 활성화를 통해 경기침체 탈출을 위한 모멘텀을 확보하려는 중국 정부의 노력에 민간기업은 이렇다할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국영기업을 육성하고 민간기업은 홀대해온 국진민퇴(國進民退) 정책이 가져온 부메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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