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구영
정구영

지난 5월 튀르키예 대선에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당선돼 연임에 성공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내각제였던 2003년 총리로 첫 집권한 이후 대통령제로 바뀌는 과정을 거치며 20년째 장기집권 중이다. 이번 대선 승리로 2028년까지 5년 더 집권하게 됐고, 중임 대통령이 임기 중 조기 대선을 치러 당선될 경우 5년 더 재임이 가능해 최장 2033년까지 권좌를 지킬 수 있다. 사실상의 종신집권이자 21세기 술탄인 셈이다.

당초 열세로 점쳐졌던 에르도안 대통령이 선거에서 이긴 것은 가정용 천연가스 공짜, 무료 인터넷 데이터 제공, 공공근로자 임금 인상 등 선심성 공약 때문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선거 결과 발표 직후 리라화 가치가 급락하는 등 튀르키예 경제의 앞날에 먹구름이 낄 것을 예고했다.

이는 선거 이전 에르도안 대통령의 역주행 행보에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는 고물가 상황임에도 한사코 금리 인상을 반대했다. 경제학 교과서와는 정반대인데, 은행과 부자에게만 이로운 정책이라는 것이 이유다. 이로 인해 물가 상승률이 50%를 넘어도 "신(神)의 의지로 물가는 떨어질 것"이라고 강변했다.

포퓰리즘의 해악을 논할 때마다 언급되는 대표적인 나라가 베네수엘라다. 지난 2020년 6월까지 국민들에게 휘발유를 리터당 1센트 이하로 팔았다. 사실상 공짜로 나눠준 셈이다. 이 나라에서는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의 이름을 딴 ‘마두로 다이어트’라는 신조어가 유행 중이다. 극심한 식량난 때문에 국민들의 평균 체중이 ‘강제로’ 11kg 이상 줄어서 생긴 말이다.

‘공짜 점심은 없다’는 사실 정도는 튀르키예 국민도 안다. 그럼에도 재차 에르도안 대통령의 손을 들어준 것은 그만큼 공짜의 유혹이 강렬하다는 방증이다. 남유럽의 돼지들(PIGS)이라는 조롱을 받은 포르투갈(P), 이탈리아(I), 그리스(G), 스페인(S) 국민도 뿌리깊은 포퓰리즘으로 국가부도 위기를 겪은 바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좌파 정당의 포퓰리즘에서 속속 등을 돌리고 있다. 지난달 23일 치러진 스페인 총선에서 중도우파의 국민당이 중도좌파의 집권 사회노동당을 제치고 제1당에 오른 것이 대표적이다. 과반 의석 확보에는 실패해 ‘절반의 성공’에 그쳤지만 선심성 정책만으로는 경기침체를 타개해 나갈 수 없다는 유권자들의 판단을 확인한 선거가 됐다.

그리스 유권자들도 지난 6월 총선에서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총리가 이끄는 중도우파 성향의 집권 신민주주의당에 재차 힘을 실어줬다. 국가재정을 옥죄어온 연금과 복지를 줄이고, 성장 중심의 정책을 펼친 것이 기업 경쟁력 향상과 국가 신인도 상승으로 돌아오자 몰표로 화답한 것이다. 재정 중독에 빠졌던 이탈리아와 포르투갈 국민들 역시 좌파 정당의 퍼주기식 포퓰리즘과 결별하고 있다. 문제는 포퓰리즘의 폐해가 비단 경제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포퓰리즘은 공통의 적(敵)을 필요로 한다. 좌파 정당의 포퓰리즘에서 상정하는 공통의 적은 기득권 세력이다. 기득권 세력이 나라를 장악해 서민을 착취하고, 이윤을 독점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전지전능한 기득권 세력은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가상의 적을 만들어 국민 사이의 증오심을 키우고, 그 과정에서 정치적 이득을 취하는 것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2021년 7월 대선 출마 선언문에서 밝힌 억강부약(抑强扶弱)도 포퓰리즘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준다. 얼핏 약한 자를 돕는 부약이 목표인 것 같지만 핵심은 억강이다. 기만적 언더독이자 국민 갈라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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