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광저우의 아파트 건설 현장. /AFP=연합
중국 광저우의 아파트 건설 현장. /AFP=연합

중국 부동산 개발업체의 연쇄 디폴트 위기에 중국판 리먼브라더스 사태가 터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중국의 2위 부동산 개발업체였던 헝다(恒大)가 미국 뉴욕 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한 것이 방아쇠가 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헝다의 파산보호 신청은 중국 부동산 개발업체의 연쇄 디폴트 위기에 따른 글로벌 투자자의 불안감이 전방위적으로 확산되는 도화선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리먼브라더스 사태는 미국의 4대 투자은행(IB)이었던 리먼브라더스가 무분별하게 주택담보대출을 늘렸다가 집값이 급락하면서 파산한 사건으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진원지가 됐다. 중국판 리먼브라더스 사태라는 말이 나오는 것은 최근 중국 부동산 개발업체의 연쇄 디폴트 위기가 리먼브라더스 사태처럼 부동산 가격의 급격한 하락에서 비롯돼 신탁업계 등 중국의 금융시스템으로 전이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 부동산 개발업체의 연쇄 디폴트 위기가 중국을 벗어나 미국과 유럽 등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으로 확대될 가능성은 크지 않은데다 대(對)중국 수출이 급감하는 등 탈중국이 어느 정도 진행된 상황이어서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제한적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20일 주요 외신에 따르면 헝다는 지난 1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 파산법원에 파산보호법 15조(챕터 15)에 따른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챕터 15는 외국계 기업이 구조조정을 하는 동안 미국 내 자산을 보호하기 위해 진행하는 파산 절차다. 신청이 받아들여지면 헝다의 역외자산에 대한 소송이 중지되고, 채권자들의 압류도 불가능해진다.

헝다는 지난 2021년 12월 227억 달러(약 30조원) 규모의 달러화 표시 채권을 갚지 못해 디폴트에 빠졌다. 지난해 말 기준 헝다의 부채는 2조437억 위안(약 374조원)에 달하는데, 이는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2%와 맞먹는 수준이다.

앞서 중국 최대 부동산 개발업체 비구이위안(碧桂園)은 지난 7일 만기가 도래한 액면가 10억 달러 채권 2종에 대한 이자 2250만 달러를 지불하지 못해 채무불이행 위기에 직면했다. 비구이위안이 30일 이내에 상환을 하지 못하면 디폴트를 맞게 된다. 최근에는 국영 부동산 개발업체 위안양(遠洋)도 2094만 달러의 채권 이자를 상환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도미노 디폴트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 와중에 은행과 달리 엄격한 규제를 받지 않아 ‘그림자 금융’으로 불리는 신탁업계로까지 리스크가 확산되면서 홍콩 항셍지수 등 중국 증시도 가파른 하락곡선을 그리고 있다. 중국의 신탁업계는 오랜 기간 중국 내 부동산 개발업체의 자금조달원 역할을 해왔다.

중룽(中融)국제신탁이 대표적이다. 금융그룹 중즈(中植)의 계열사인 중룽국제신탁은 지난해 말 기준 운용자산액이 1080억 달러(약 145조원)에 달하는 중국 10대 투자신탁회사다. 중룽국제신탁은 최근 수십 개 투자신탁 상품의 이자 지급 및 원금 환매를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룽국제신탁의 펀드 4개에 돈을 맡긴 상장사 3곳의 증권거래소 공시로 드러난 환매 중단 피해액은 1400만 달러 규모다.

신탁업계에서 흔치 않게 발생하는 환매 중단 사태가 투자자들의 공포감을 키우고 있는 것은 비구이위안을 비롯한 부동산 개발업체의 연쇄 디폴트 위기와 맞물려 발생했기 때문이다. 중국신탁협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말 기준 중국 내 신탁펀드의 부동산 부문 위험노출액은 1550억 달러(약 208조원)에 이른다.

중국의 부동산 개발업체 연쇄 디폴트 위기는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은 물론 수출 회복 지연 등으로 우리 경제의 하반기 경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하지만 미국의 리먼브라더스 사태와 달리 아직은 중국 국내의 문제로 여겨지는데다 중국은 파생상품 등 금융시장이 발달하지 않아 이번 사태가 글로벌 금융시장으로 확산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아울러 실물경제 측면에서 중국 부동산 개발업체의 연쇄 디폴트 위기가 단기적으로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도 크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우리나라의 대중 수출 비중은 이미 사드(THAAD) 사태 이후 많이 줄어든 상태다. 아울러 최종 소비재보다 중간재 수출 비중이 높다는 점도 충격을 줄이는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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