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희
김은희

올 여름에도 어김없이 광복절은 찾아오고 ‘역사전쟁’은 일어났다. 광복회 이종찬 회장은 1948년 건국절론이 해방 후 단독정부수립에 참여한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을 건국공신으로 만들고 독립운동을 폄훼하는 일이라고 맹렬히 비판했다. 기념일의 이름을 둘러싼 이 갈등의 한가운데에는 사실 누가 번영하는 대한민국의 ‘건국공신’인가를 따지는 ‘권력투쟁’ 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세계관의 다툼이 벌어지고 있다.

광복회는 독립운동가와 그 유족 혹은 가족들이 만든 단체다. 광복회가 설립된 법적 근거는 "국가유공자 등 단체 설립에 관한 법률"이다. 이 법에 따르면 국가유공자 단체의 주목적은 국가유공자의 유족 또는 가족이 상부상조하여 자활능력을 기르게 하는 것에 있다. 이를 위해 유공자 단체는 정부와 지자체로부터 보조금과 상당한 특혜를 받을 수 있다. 예컨대, 유공자 단체는 직접 수익사업을 할 수 있으며 정부, 지자체와 수의계약을 할 수 있다.

그런데 광복회의 실제 활동을 보면 통상적인 보훈의 범위를 훨씬 넘어서 있다. 광복회 홈페이지를 보면 첫 화면 가운데에 뜨는 것이 "민족정기 선양 사업"이다. ‘주요사업’ 항목을 살펴보면 민족정기 선양 사업 이외에도 독립운동을 기리고 널리 알리는 교육사업, 학술회의, 사적 발굴 등을 추진하는 일이 광복회 회원 간의 상부상조와 회원의 복지보다 훨씬 중요시되고 있는듯하다. 물론 이러한 사업이 크게 봐서 국가유공자 단체의 설립 목적에 어긋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유공자 단체의 수익활동에서 나오는 수익금은 회원들의 복지를 위해 우선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국가유공자단체법은 21조에 명시하고 있다.

또한 주요사업 중 "독립유공자 후손을 위한 장학사업"은 증손자녀 학자금 보조지원 사업의 확대를 계획하고 있다. 만약 광복회가 순수 민간단체라면 독립유공자 증손자녀 학자금을 지원하는 것이 하등 문제가 될 수 없다. 그러나 국가와 지자체로부터 많은 특혜를 받는 유공자 단체가 유공자의 증손자녀까지 지원하는 것은 조상이 누구인가에 상관없이 모든 국민은 평등하다는 근대국민국가의 평등주의에 어긋난다. 대부분의 근현대국가의 보훈 정책의 대상은 유공자 본인과 배우자, 그리고 미성년 자식으로 제한된다.

사실 광복회는 특정한 시기에 나라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순국선열의 유족과 애국지사의 가족에 대한 보상을 위해 만들어진 단체이기 때문에 유족과 가족이 다 사망하면 소멸되는 게 마땅하다. 그런데 광복회는 ‘중장기발전’과 ‘광복재단’ 설립을 계획하고 있다. 그러나 독립운동의 역사도 해방 후 역사처럼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으며 논쟁이 분분할 수 있다. 국민의 세금과 국가 재산으로 대대손손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을 지원하고 특정한 독립운동의 역사를 성역화 하는 것은 조선시대 양반사회처럼 도덕적으로 우월한 조상을 숭배하고 그 ‘후손’을 특권층으로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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