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형
박재형

윤석열 대통령은 미국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의에서 북한의 사이버 범죄 차단을 위한 3자 실무협의체 신설 등 대북 공조 방안에 합의했다.

3국 정상은 북한이 가상자산 탈취, 해외 파견 정보기술(IT) 인력 활동 같은 불법 사이버 수익을 바탕으로 핵·미사일 개발을 지속한다는 인식에 따라, 이에 대한 대응을 한미일 차원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CNN 등 미국 언론은 지난 6월, 북한 권력의 핵심인 정찰총국 소속 해킹조직 라자루스가 에스토니아의 암호화폐 지갑 회사 이용자로부터 3500만 달러(약 457억 원) 상당의 암호화폐를 탈취했다고 보도했다. 유엔 등에 따르면 북한의 해킹조직은 최근 몇 년 동안 금융기관, 암호화폐 회사 등을 해킹해 적어도 수십억 달러 이상의 암호화폐를 훔친 것으로 알려졌다. 백악관은 북한의 미사일 개발 자금 중 절반이 이렇게 탈취한 자금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2022년 미국의 한 블록체인 기업이 1억 달러(약 1235억 원) 상당의 암호화폐를 도난당했다. 연방수사국(FBI)은 이 사건 역시 북한 해킹조직 소행으로 결론지었다. 2020년부터 2022년 사이 북한의 사이버 공격으로 도난당한 자산의 가치가 40% 이상 증가했다는 분석도 있다. 이렇게 탈취한 천문학적인 자금은 핵과 미사일 개발, 그리고 김정은 독재체제 유지를 위한 비자금, 김정은의 사치품 구입 등에 사용된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지난해 취임 후 첫 해외 출장지는 미국 뉴욕이었다. 당시 한 장관은 뉴욕남부연방검찰청에서 암호화폐 사건과 관련해 한미 양국이 실질적인 공조에 나서기로 했다고 밝혔다. 북한의 해킹처럼 디지털자산 관련 범죄는 대부분 국경을 넘어 이루어진다. 한 장관이 이러한 범죄에 우선 대응하기 위해 미국과 협력에 나선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생기는 의문이 있다. 왜 이전 문재인 정권에서는 이러한 모습을 볼 수 없었을까?

유엔 대북제재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북한은 17개 국에서 35건의 해킹을 통해 6억7000만 달러, 한화 7000억 원이 넘는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를 탈취했다. 35건의 공격 중 한국이 10건, 인도가 3건이다. 암호화폐 거래소 등의 자금 탈취를 목적으로 하는 북한의 해킹 공격이 한국에 집중된 것으로 조사됐다. 보고서는 이렇게 탈취한 자금이 여러 국가에서 수천 건의 송금을 통해 옮겨진 것으로 분석했다.

한국이 북한 해커들의 집중 공격 대상이고, 그런 공격을 통해 천문학적인 자금을 탈취당했다는 사실이 이처럼 진작에 드러났다. 그런데 문재인 정권 당시 국정원이나 경찰이 이런 해킹 공격의 범인이 북한이며, 얼마를 탈취당했고, 어떻게 추적해서 얼마라도 회수했다는 소식을 접해 본 기억이 없다. 이 때문에 미국의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과연 문재인 정부는 북한 해커의 자금 탈취를 못 잡는가, 안 잡는가? 아니면 그냥 문 열어두고 방관하는 것인가?"하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북한의 사이버 범죄에 대응하는 한미일 3자 실무협의체 신설 합의는 이번 한미일 정상회의에서 우리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의미가 있는 부분이다. 북한의 도발에 대응하기 위한 합동 군사 훈련보다 북한 독재 정권에 대해 훨씬 직접적이고 중대한 충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김정은 체제를 어렵사리 지탱하도록 하는 ‘돈줄’을 원천 차단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곧 북한 공산당 독재 체제 붕괴를 더욱 앞당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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