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수
정기수

"판공비 1원도 안 쓴" 보직 교수를 독자들은 본 적이 있는가?

향년 92세로 별세한 윤석열 대통령의 부친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가 상경대학장일 때 교직원이었다는 사람이 쓴 추모 글 내용에 과장이 좀 섞였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가 그만큼 청렴하고 정직한 사람이었다는 회고담은 진실일 것이다.

60년 이상 그를 학교에서 가까이 본 제자·교수들이 수천 명일 텐데, 거짓말을 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가히 시대의 인격, 시대의 지성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은 학자다. 그런 분에게 조롱을 퍼부은 진보좌파 쓰레기 인간들의 패륜이야 그렇다 쳐도, 언론 매체들의 부고(訃告, Obituary) 기사도 인색해 마지않은 양과 스토리였다.

물론 진영 싸움의 결과다. 반대 진영 매체들은 그가 대통령 아버지여서 싫고 극구 무시하고 싶어서 기사를 거의 내지 않았다. 보수우파 매체들은 또 그들대로 눈치를 봐서, 고인의 인품과 대통령 부친이라는 기사 가치에 충분히 부응하지 못한, 감동 없는 기사 작성과 지면 배정을 했다. 아들이 대통령이어서, 역설적으로 제 대접을 받지 못한 셈이다.

아버지를 보면 아들이 보인다. 윤기중 교수는 아들 윤석열 학생의 엄한 아버지이자 스승이었다. 그의 의식과 사고방식, 깨끗한 선비 정신이 아들을 지덕체 고루 갖춘 청년으로 성장하도록 가르쳤다. 그 아버지는 대통령이 된 아들에게 "잘 자라 줘서 고맙다"라는 말을 남겼다.

윤 교수는 석사 학위만으로 교수·상경대학장·재무처장을 역임하고 정년까지 마친 ‘무(無) 박사 학위자’로 유명하다. 박사 학위 없는 교수는 요즘 교수 사회에서 ‘무학’이나 마찬가지다. 그는 실력은 없으면서 학위는 요령으로 받는, 구제(救制) 박사(석사 학위 교수에게 국내외 박사 학위를 쉽게 취득하는 기회 제공) 제도에 맞서 "그런 박사 학위는 소용없다"라며 석사를 고집했다.

그는 1960년대 일본 문부성 국비 장학생 1호로 선발돼 히토쓰바시 대학에서 공부했다. 여러 권의 통계학 교재들을 집필해 국내 통계학 기틀을 잡은 원로 학술원 회원이었다. 한국 사회 불평등에 관한 논문도 여러 편 발표했다. 박사를 몇 개 따고도 남을 실력과 업적이다.

윤 대통령이 부친의 이런 면을 많이 닮았다. 그도 학사 이상의 학위가 없다. 형식보다 실질적인 내용과 결과를 중시한다. 무엇보다 소탈하고 검소하다. 겉은 꼬장꼬장하지만 속은 따뜻한 교수 아버지와 알뜰하고 자애로운 교수 어머니가 낳아 기른 아들이기에 그렇다.

그가 고시 9수(修)를 한 것도 아버지 영향이다. 고속 출세주의자가 아니어서 그렇게 된 것이었다. 법서만 읽고 외워 재학 중 고시에 합격할 생각을 하지 않고, 철학·경제학 같은 궁금한 것들은 다 알아야 직성이 풀렸다. 노래(방미 만찬장에서 돈 맥클린의 ‘아메리칸 파이’가 그냥 불려진 게 아니다)도 좋아하고 친구들 경조사에도 빠짐없이 자리를 지켰다.

신랑 윤석열이 신부 김건희와 결혼할 때 그의 통장에 든 돈은 단 2000만원이었다. 검사 생활 20년에 저축액이 이 정도라면 낭비벽이 아주 심하거나 매우 청렴한 사람이다. 부잣집 딸인 김 여사는 신랑을 후자로 보아서 집 전세와 살림살이 혼수 비용을 댔다.

고인이 검사가 된 아들에게 입버릇처럼 경고한 두 가지는 "부정한 돈을 받아선 안 된다"와 "밥 얻어먹고 다니지 말라"였다. 공직자 자녀에게는 이런 부모가 있어야 한다. 윤석열은 그런 점에서 복받은 아들이고, 따라서 대한민국도 복받은 나라다.

윤기중 교수는 작년 용산 대통령실로 아들이 모셨을 때 "국민만 바라보고 직무를 수행하라"고 당부했다. 대통령이 취임 이후 기회 있을 때마다 해 온 그 말이 바로 아버지의 가르침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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