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인민은행. /로이터=연합
중국 인민은행. /로이터=연합

중국의 고도성장을 견인해 온 사회간접자본(SOC) 투자와 부동산 개발 중심의 경제 모델에 적신호가 들어왔다. 중국을 빈곤에서 벗어나 G2의 경제 대국으로 이끈 성장 동력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은 채 경기침체 속 물가 하락을 의미하는 디플레이션이 본격 가시화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가 단순하지 않은 만큼 해법도 찾기 어려운 상태다. 부동산에 발목이 잡혀 있는 중국 경제에 ‘회색 코뿔소’와 ‘검은 백조’가 동시에 나타나면서 사면초가의 형국을 맞고 있기 때문이다. 회색 코뿔소는 지방정부의 급격한 부채 증가, 그림자 금융, 고령화와 저출산, 청년실업률 등 충분히 예상할 수 있지만 간과하기 쉬운 위험을 말한다. 서방국가의 중국 고립화 전략, 글로벌 수요 부진, 폭염·가뭄·홍수 등의 이상기후는 예측하기 어려운 돌발 위험을 의미하는 검은 백조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0일(현지시간) ‘중국의 40년 호황이 끝났다’는 제하의 해설기사에서 "중국을 빈곤에서 경제 대국으로 이끈 경제 모델이 망가진 것으로 보인다"며 "위험신호가 온천지에 널렸다"고 진단했다.

온갖 위험신호의 진원지는 부동산 개발업체의 연쇄 디폴트 위기를 낳은 SOC 투자와 부동산 개발이다. 중국은 매년 국내총생산(GDP)의 44%가량을 SOC 투자와 부동산 개발에 쏟아부었다. 중국은 이를 통해 부족했던 사회기반시설 확충은 물론 경기부양 효과도 얻을 수 있었다.

특히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6년 미중 무역전쟁 등 대내외 경제 여건 악화로 국가 경제가 흔들릴 때마다 SOC 투자와 부동산 개발로 위기를 모면하는 ‘단맛’을 보았다. 지난 2008년에는 경기부양을 위해 투입한 4조 위안(약 733조원) 중 45%인 1조8000억 위안을 SOC 투자로 돌려 글로벌 금융위기 와중에서도 9%대의 경제성장률을 사수했다.

하지만 지방정부를 중심으로 과잉·중복투자가 이뤄지면서 경제 효과는 마땅찮은데 막대한 부채만 쌓이는 현상이 나타났다. 여기에 디플레이션이 가시화되면서 위태롭게 고수해 온 경제 모델의 고름이 터지기 시작했다.

앞서 중국 정부는 거품 붕괴를 우려해 지난 2020년부터 부동산 대출잔액 기준 마련 등 강력한 부동산 규제를 추진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 같은 규제가 부동산 개발업체의 연쇄 디폴트 위기를 낳았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중국 부동산 개발 투자 증가율은 지난해 -10%를 기록해 저점을 찍은 뒤 올해 1~7월 누적 증가율 또한 -8.5%로 내리막을 걷고 있다.

그동안 SOC 투자는 중국 경제 성장의 보증수표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이제는 투자 여지가 많지 않은 상태다. 아파트는 너무 많이 건설돼 유령 아파트가 나올 정도다. 중국 서남대학의 자료에 따르면 중국 아파트 5분의 1이 비어 있으며, 이는 1억3000만 채에 달한다.

특히 SOC 투자와 부동산 개발 자금으로 투입됐던 지방정부의 부채까지 한계에 이르면서 부동산시장은 본격 붕괴하기 시작했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중국 지방정부의 부채 규모는 94조 위안(약 1경720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이 중 70%인 66조 위안(약 1경2000조원)이 지방정부의 자금조달용 특수법인인 지방정부융자기구(LGFV)의 부채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방정부융자기구의 부채는 지방정부 대차대조표에 기록되지 않아 ‘숨겨진 부채’로 불린다.

IMF는 코로나19 팬데믹 이전까지 최소 6%대를 기록했던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앞으로 수년간 4% 미만에 머물 것으로 보고 있다. 영국의 컨설팅업체 캐피털 이코노믹스는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2030년에는 2% 내외로 떨어질 것이란 전망을 내놓았다. 미국 컬럼비아대학 소속 경제사학자인 애덤 투즈 교수가 "우리는 세계 경제의 역사에서 가장 급격한 궤도를 그리는 기어 변환을 목도하고 있다"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시진핑(習近平) 주석은 3연임을 밀어붙일 때 각종 굴기를 선포하며 이에 맞서면 ‘머리가 깨질 것’이라고 위협했다. 2035년에는 경제 규모 역시 미국의 두 배가 될 것이라고 호언했다. 하지만 지금 부동산 위기 속에 회색 코뿔소와 검은 백조를 동시에 맞딱뜨린 상태다. 중국 경제가 속절없이 추락하며 G1은 커녕 중진국도 졸업하지 못한 채 주저앉을 공산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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