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근
황근

가짜뉴스는 2016년 트럼프 후보의 대통령 당선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 가짜뉴스는 마케도니아 대학생들이 SNS에 재미로 올린 허위기사에서 시작됐다. 그 기사들은 뜻하지 않게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고, 기사를 올린 학생들에게는 적지 않은 경제적 대가도 따라왔다.

이처럼 장난처럼 시작된 가짜뉴스는 삽시간에 창궐했다. 영국 브렉시트 투표에서 보듯이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정치 수단으로 자리잡게 된다.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무엇이라도 이용해야 하는 대중정치 생리가 가짜뉴스를 그대로 놓아둘 리 없었던 것이다.

구성원들 간의 신뢰 체계를 와해시키는 가짜뉴스는 이미 우리사회 곳곳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특히 민주정치 기반을 뿌리째 흔들어 놓고 있다. 정치 정보의 진위를 혼란스럽게 만들어 유권자들의 합리적 선택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미디어가 제공하는 정보에 의존해야 하는 대의민주주의 허점을 절묘하게 파고든 것이다.

이런 거짓 정보는 사람들의 정치적 선호를 극단화시켜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특히 미디어 플랫폼 알고리즘의 필터 버블(filter bubble)과 확증편향이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미디어 알고리즘과 가짜뉴스의 친화적 콜라보가 민주주의 제도 근간을 흔들고 있는 것이다. 신뢰가 무너진 왜곡된 정보 시스템이 합리성을 상실하고 집단정서에 매몰된 극단적 정치 지지층을 기반으로 하는 이른바 ‘팬덤 정치’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한마디로 가짜뉴스는 이런 팬덤 집단들의 정치적 동력원이 되고 있는 셈이다.

트럼프나 푸틴 그리고 존슨 전 영국 총리는 팬덤 정치 1세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두테르테 전 필리핀 대통령이나 최근 예비선거에서 1등을 차지한 아르헨티나 밀레이 후보에 비하면 어쩌면 점잖은 편이다. 두테르테나 밀레이는 정치적 극단주의와 스스로 규정한 공공의 적에 대한 강력한 응징을 표방하고 있다. 심지어 현재 정치 시스템 자체를 부정하기도 한다. 그럴수록 지지자들은 열광하고 지지도도 상승한다.

이들이 파시즘이나 나치즘 같은 전체주의와 다른 점은 집단행동의 근거지가 온라인이라는 것이다. 온라인 공간은 사회적 책임성에서 벗어난 비대면 상태, 익명의 공간이다. 극단적 집단의식(group polarization)이 쉽게 형성될 수 있다. 또 그렇게 형성된 집단의식이 아주 효과적으로 개개인의 정치적 선택과 활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다른 나라들은 선거에 가짜뉴스가 창궐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제도 마련에 애를 쓰고 있다. 이미 프랑스는 2018년에 ‘정보 조작 대처법’을 제정했다. 선거 3개월 전부터 가짜뉴스에 대한 플랫폼 사업자의 책무 및 방송규제기구의 권한을 강화하는 내용이다. 가짜뉴스에 대한 신속한 대응을 위해 개별 판사에 의한 가처분 권한도 부여했다. 아직 논의단계지만 미국에서는 인터넷 내용물 규제와 관련된 ‘정보품위법’ 개정 움직임도 활발하다.

우리나라는 가짜뉴스 폐해에 대한 정치권의 목소리는 높지만, 정작 실효성있는 법·규제 마련에는 소극적이다. 어찌 보면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한 정쟁의 소재나 도구로서 가짜뉴스 공방을 벌이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이런 상태라면 내년 총선에서도 줄리·생태탕·페라가모가 다시 출현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총선이 몇 달 앞으로 다가왔다. 가을 정기국회가 끝나면 본격적인 선거 정국에 들어설 것이다. 하지만 지난 총선에서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냈던 선거제도 개정은 물론이고 선거제도 자체를 왜곡할 수 있는 가짜뉴스 규제 논의는 거의 볼 수 없다. 승패 여부를 떠나 내년 총선에서도 가짜뉴스는 민주주의 제도 자체를 위협하는 심각한 요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이라도 선거기간 중 가짜뉴스 창궐을 예방하기 위한 법제도 마련에 나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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