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광
장석광

'젓지 말고 흔들어서(Shaken not Stirred)' '난 여기 절대 없었어(I was never here)' '일급비밀(Top Secret)' '자백 유도제(Truth Serum)' '모든 것을 부인하라(Deny Everything)' '흔적을 남기지 마라(Leave No Evidence)'. 워싱턴 국제스파이박물관의 기념품에 새겨진 문구들이다.

‘젓지 말고 흔들어서’는 제임스 본드 영화의 상징적 대사 "보드카 마티니! 젓지 말고 흔들어서"(Vodka martini! shaken not stirred)에서 유래했다. ‘난 여기 절대 없었어’는 캐나다 보안정보국(CSIS) 요원이었던 키르쉬(Andrew Kirsh)의 회고록에서 나왔고, ‘자백 유도제’는 CIA가 오사마 빈 라덴의 알 카에다 조직을 추적하면서 용의자들의 묵비전략으로 조사가 벽에 부딪히자 약물 투여를 검토하면서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 ‘흔적을 남기지 마라’ ‘모든 것을 부인하라’는 세계 모든 스파이들의 행동철칙이다.

흔적을 남기지 않기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스파이가 있다. 마르쿠스 볼프(Markus Wolf)다. 오죽했으면 ‘얼굴 없는 사나이’로 불려졌을까! 독일이 통일되고 동구권이 붕괴됐을 때 미국의 시사주간지 ‘USA & 월드 리포트’가 냉전 시절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정보기관으로 동독의 해외정보국(HVA)을 꼽았다. 볼프는 1953년부터 1987년까지 34년간 HVA를 이끌면서 ‘스파이계의 대부’로 추앙받았다.

1981년 어느 날, 볼프가 60대 후반의 신사와 함께 HVA 정보학교를 찾았다. 교육생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강당이 떠나갈 듯 박수를 보낸다. 영웅적 환영을 받는 신사는 영국에서 30년간 이중 스파이로 활동하다 소련으로 망명한 ‘이중 스파이계의 전설’ 킴 필비(Kim Philby)였다. 이날 필비는 ‘모든 것을 부인하라’(Deny Everything)는 내용으로 특강을 했다.

"그들은 저의 감정을 동요시켜가며 자백을 강요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들의 어떤 협박에도 결코 굴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오늘 마지막으로 여러분들께 드리고 싶은 당부 말씀은 여러분들은 그 어떤 경우에도 절대 자백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설사 그들이 당신이 자필로 쓴 그 어떤 문서를 당신 코앞에 들이민다 하더라도 일단은 날조라고 받아치십시오. 그런 다음 모든 것을 부인하십시오."

모든 것을 부인하는 데 있어서 킴 필비 못지않은 스파이가 있다. 미국의 소련 간첩 앨저 히스(Alger Hiss)다. 1950년 1월, 히스는 연방대법원으로부터 5년을 선고받았다. 법원은 처벌 시효가 끝난 간첩죄 대신 위증죄를 적용했다. 히스는 평생을 ‘미국판 드레퓌스’ ‘냉전의 순교자’로 행세했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되면서 KGB 간부들의 증언, 헝가리 비밀경찰의 기록, 코민테른의 비밀문서, 1995년 비밀 해제된 국가안보국(NSA)의 감청자료 등에서 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들이 속속 공개되는 가운데서도 히스는 1996년 죽을 때까지 자신의 간첩 활동을 부인했다.

간첩혐의로 구속기소 된 OOOO 간부 O명이 며칠 전 법원의 첫 공판에서 모두 혐의를 부인했다고 한다. 스파이 활동 준칙에 철저한, 진정 스파이다운 행동이다. 북한에서 내려온 OO건의 지령문과 여기서 올려 보낸 OO건의 대북 보고문, 수차례에 걸쳐 해외에서 북한 공작원을 접선한 사실은 모두 수사기관이 날조한 것이다. 설사 나중에 대법원이 간첩죄로 유죄판결을 내린다 하더라도 그것은 잘못된 법 때문이지 결코 간첩활동을 해서가 아니다. 죽는 순간까지도 부인해야 그게 진정한 스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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