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3 원산부흥 인도한 하디 선교사 개인적 각성이 1907 평양대부흥 시작
토착 교인들 앞 ‘괴롭고 창피한’ 지도자의 회개가 조선 교회의 부흥 인도해

한국교회 성장했지만 하디처럼 먼저 회개로 모범 보이는 지도자는 안 보여
천국복음 전해 성도들 좁은길로 인도하고 자신들이 먼저 그런 삶 살았어야

곽성규
곽성규

기독교대한김리회(이철 감독회장, 기감)은 지난 17일부터 24일까지 부산, 강릉, 대전, 성남 등에서 ‘하디 영적 각성 120주년 기념성회’를 열었다. 미국 남감리회 소속 선교사였던 로버트 A. 하디(1865~1949)는 1903년 원산에서 사경회와 부흥회를 인도한 인물로, 그의 개인적 각성을 시작으로 한국교회 전체에 영적 각성운동이 일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감리교는 1907년 평양 대부흥의 시발점이 된 하디 선교사의 정신을 되새기고자 이번 기념성회를 열었다.

1903년 8월, 하디는 원산의 토착 교인들 앞에서 했던 ‘괴롭고 창피한’ 자백을 한다. 그는 ‘우리가 정말로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 안에 거하는지 돌아보길 바랍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잘 못믿는 것은 전적으로 선교사인 저에게 책임이 있습니다’라며 자기의 노력과 열심을 가지고 선교를 했지만 열매를 맺지 못한 것이 자기의 잘못임을 깨닫고 토착민인 조선인 회중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회개를 했다.

엘리트 의사 출신인 서양인 선교사가 신앙을 가져도 삶이 변하지 않는 조선 교인을 탓하며 오만과 교만의 시선으로 깔보던 자신의 모습을 먼저 회개하자, 당시 조선 교인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이는 회개와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는 1903년 ‘원산부흥운동’으로 번졌고, 원산부흥운동은 1907년 평양 장대현교회를 중심으로 한 ‘평양대부흥운동’으로 이어졌다. 당시 교계 지도자 한 사람의 ‘괴롭고 창피한’ 회개의 불씨가 한국교회의 역사적의 부흥의 불길이 된 것이다.

오늘날의 한국교회는 하디 선교사의 시대와 얼마나 다를까. 교회는 많아지고 성도의 수는 늘었느나 여전히 신앙을 가져도 삶이 변하지 않는 교인들은 많은 것 같다. 대형교회들이 많이 생기고 목회자들의 지위는 높아졌지만 하디 선교사처럼 자신이 먼저 회중들 앞에서 공개적인 회개로 모범을 보이며 변화를 이끌어 내는 지도자는 보이지 않는다. 기감의 하디 기념성회가 되새겨야 할 사실은 바로 이것이 아닐까 싶다.

그간 대부분의 주요 한국교회 지도자들은 ‘천국 복음’을 외면해 왔다. 회개하라고 외치지 않았다. 행함 있는 삶을 강조하지 않았고, ‘오직 믿음’만 외치면서 행함에 대해서는 희석시켜 왔다. 성경은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만 천국 들어간다’고 분명하게 기록돼 있는데도 신앙고백만 하면 모두가 다 구원받고 천국 가는 것처럼 설교했다. 수많은 목사들과 신학자들과 부흥사들이 이런 말씀을 전해왔다. 그러니 자신들도 그렇게 회개하지 않고 살아온 것이 아닐까.

교리가 아닌 성경 그대로 가르치기 위해 끝없이 연구하고 노력하는 사역, 구원파적 거짓 복음이 아니라 회개와 예수님의 주 되심을 강조하는 천국 복음을 전해 성도들을 생명의 좁은 길로 인도했어야 했다. 그리고 자신들이 먼저 그런 삶을 살았어야 했다. 그랬다면 한국교회는 놀라운 부흥을 계속 경험했을 것이다. 

이제라도 한국교회 지도자들 모두가 하디 선교사처럼 성령님의 강력한 이끄심에 따라 회개와 성찰로 겸손히 하나님과 성도들 앞에 서기를 기도한다. 철저하게 성경적인 ‘천국 복음’ 전파를 통해 조국교회의 부흥과 회복의 역사로 이끌어낼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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