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창열
정창열

김정은이 지난 21일 평안남도 안석 간석지의 피해복구 현장을 현지 지도하면서 김덕훈 내각총리 등 관련 간부들을 거친 언어로 비판했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간석지 배수 구조물 설치 공사를 제대로 하지 않아 바닷물에 제방이 파괴되면서 간석지 구역이 침수됐다고 한다.

이와 관련 김정은은 "최근 몇 년 간에 김덕훈 내각의 행정경제 규율이 점점 더 극심하게 문란해졌고 그 결과 건달뱅이들의 무책임한 일본새로 국가경제사업을 다 말아먹고 있다"라고 몰아붙였다. 이어 "농작물 피해방지 대책을 철저히 세울 데 대해 특별히 강조하는 시점에조차 일군(간부)들의 무책임성과 무규율성이 난무하게 된 데는 총리의 무맥한 사업 태도와 비뚤어진 관점에도 단단히 문제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나라의 경제사령부를 이끄는 총리답지 않고 인민 생활을 책임진 안주인답지 못한 사고와 행동에 유감을 금할 수 없다. 내각총리의 무책임한 사업 태도와 사상 관점을 똑똑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해, 관련 인사들에 대한 혁명화 교육 등 강력한 문책을 예고했다.

김정은이 이번에 내각 책임자인 김덕훈을 비롯한 간부들을 노골적으로 비판한 것은, 일단 제방 관리 부실을 구실삼아 식량난 등 열악한 경제 상황의 화살을 이들에게 돌리고 자신은 책임을 회피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북한의 심각한 경제 상황과 관련, 국가정보원은 지난 17일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북한이 2020~2022년 3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률을 보이며 2016년 대비 2022년 GDP가 12% 감소하는 등 경제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고 보고했다. 또 식량 사정 악화로 올해 1~7월까지 발생한 아사자가 240여 명으로, 최근 5년 평균 110여 명과 비교해 2배 이상 증가했다고 밝혔다.

국정원이 평가한 바와 같이 경제난 심화에 따라, 북한에서는 올해 현재까지 지난해 대비 3배 증가한 90여 명이 탈북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특히 거미줄 같은 대(對) 주민 통제와 감시망 속에서도 북한판 MZ세대라 할 수 있는 ‘장마당 세대’를 중심으로 김정은 일가와 정책에 대한 거침없는 불평과 항의가 이어지는 등 내부 상황이 심상치 않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같은 경제난의 근본적인 원인은 자력갱생을 내세운 폐쇄정책을 고집하는 한편 주민 경제는 외면한 채 핵·미사일 능력 확대에 자원을 낭비하고 국제사회의 제재를 자초한 데 기인한 것이다. 실제로 김정은은 간석지를 시찰한 3일 뒤인 24일 새벽 군사 정찰위성을 발사했고, 한 번 더 실패의 쓴맛을 봤다. 상당량의 식량을 구매할 수 있는 돈을 허공에 날려 버린 것이다. 이런 점에서 김정은이 질타한 관련 일군들의 제방 파괴 방치는 무력 통일을 염두에 둔 군사 우선 정책의 지엽말단적인 결과일 뿐이다. 그런데도 경제난 책임을 부하들에게 모두 전가한 것은 어불성설이다.

‘지우책인명’(至愚責人明)이라는 말이 있다. ‘지극히 어리석은 사람도 남을 나무라는 데는 밝다’라는 뜻이다. 과거 김일성이 6·25 패전 책임을 강력한 정적인 박헌영에게 전가해 제거하고 나아가서 독재 발판을 마련한 바 있다. 아무래도 잔혹함과 함께 아랫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위대한 백두가문’의 생존 유전자인 것 같다.

더불어 이번 김정은의 질타에서는 그의 자질과 인성에 대한 속살이 드러나고 있다. 인사는 만사(萬事)라고 했다. 그런데 김정은 표현 그대로 무능력자를 수년간 총리로 기용한 것은 자기 스스로 지도자 자질이 부족함을 자복한 것이다. 한편 부하들을 건달뱅이·정치적 미숙아·지적 저능아 등 비속어를 동원해 폄하한 부분은 ‘막말 공주’로 알려진 김여정을 연상케 한다. 그야말로 like brother like sister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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