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웅
전경웅

삼성준법감시위원회 이찬희 위원장이 "삼성에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말한 것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언론은 이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사라진 미래전략실의 부활 조짐"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이 위원장은 "작은 돛단배에는 컨트롤타워가 필요 없지만, 삼성은 어마어마하게 큰 항공모함"이라며 "많은 조직이 완전히 분리되지 않는 한 컨트롤타워가 없으면 효율성과 통일성에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찬희 위원장은 지난해 10월에도 "개인적인 신념으로는 (그룹 컨트롤타워 복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 위원장은 준법감시위원회를 두고 "우리는 자기 소멸을 향해 가는 조직이라고 본다"고도 했다.

2020년에 생긴 뒤 삼성 내에서는 거의 모든 안건마다 "준감위 검토가 끝났느냐"를 묻는 등 매우 신중하게 사업을 추진하는 문화가 생겼다는 게 그의 평가다. 그룹 차원의 준법감시기구가 필요한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나아가 그룹을 총괄하고 비전을 제시할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게 이 위원장의 말이다.

언론과 법률가, 경제전문가들은 삼성의 컨트롤타워를 두고 박 전 대통령 탄핵 후폭풍으로 2017년 2월 폐지한 미래전략실을 언급한다. 하지만 6년이 지난 지금 필요한 건 미래전략실 같은 조직이 아니라 전략가들이다. 특히 ‘나무와 숲을 함께 볼 수 있는 전략가’가 필요하다.

삼성은 산업별로 두각을 나타내는 계열사가 즐비하고, 자체 자산 관리에도 금융기법이 필요하다. 인재 관리도 단순 영업이익만을 생각해서 할 수 없다. 새로운 사업 진출이나 신상품 개발 또한 국가 경쟁력과 직결되기 때문에 아무거나 할 수 없다. 이런 삼성의 비전을 제시하는 건 국가의 국정 목표를 제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현재 삼성은 삼성전자에 사업지원 TF, 삼성생명에 금융경쟁력 제고 TF, 삼성물산에 EPC(설계·조달·시공) 경쟁력 강화 TF를 운영 중이다. 이곳에서 보는 미래비전과 만드는 전략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삼성이 롤 모델로 삼을 만한 조직을 운영 중인 기업도 이제는 찾기 어렵다. 특정 산업과 분야가 핵심 역량인 기업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로스차일드 가문이나 모건 가문, 멜런 가문도 삼성의 롤 모델이 되기 어렵다.

이제는 다른 조직을 따라 잡기보다는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걸어야 하는 삼성에 지금 필요한 건 ‘조직’보다 ‘전략가’로 보인다. 전략가의 롤 모델이라면 앤드루 마셜이 있다. 앤드루 마셜은 42년 간 8명의 대통령과 13명의 국방장관을 보좌하며 미국의 국방전략을 짰다. 그가 내놓은 보고서는 단 24편이었지만 냉전을 끝내고 미국이 초강대국 지위를 지킬 수 있게 했다. 냉전 대결부터 냉전 승리, 이후 다극체제 대비 전략까지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

앤드루 마셜과 같은 전략가를 얻는 것은 고(故)이건희 회장의 ‘천재 찾기’와 비슷하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좋은 학교를 나오고 많은 학위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 ‘낭중지추’(囊中之錐 ) 가운데 골라야 한다. ‘대교약졸’(大巧若拙)이라 우스울 수도 있지만 ‘천망회회 소이불실’(天網恢恢 疎而不失)과 같은 시각과 생각을 가진 사람이 필요하다. 그런 사람이 미래를 설계하면 삼성이 만들어 가면 되는 것이다.

현재 삼성은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매우 큰 숙제를 안고 있다. 특히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추진 중인 보험업법 개정안의 통과 유무에 따라 자칫 ‘삼성’이라는 대한민국 최고의 자산이 허공으로 흩어질 수도 있다. 삼성에 우리나라의 미래가 달린 셈이다. 삼성과 우리나라의 미래를 맡기는 데는 ‘조직’보다 ‘인재’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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