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657조 원 규모의 내년 예산안을 발표했다. 올해보다 18조 원(2.8%) 늘어난 규모로 문재인 정부 5년 평균치 8.7%보다 증가폭이 훨씬 낮다. 집권여당 입장에서, 내년 총선을 앞두고 목에서 손이 나올 정도로 간절했을 예산 증액의 유혹을 뿌리쳤다는 점에서, 이 정부의 건전 재정 의지를 읽을 수 있다.

문재인은 집권 기간 동안 10번의 추경을 포함, 정부 지출을 연평균 10.8%씩 늘렸다. 반면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2.3%에 불과했다. 그 결과 한 해 예산이 임기 초 400조에서 600조 원대로 50% 이상 불어났고 국가채무는 400조 증가해 1000조 원을 돌파했다.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이 떠넘긴 부실을 짊어지고 있다. 재정 건전화는 아프지만 불가피한 선택이다.

윤 대통령은 이번 예산안을 관통하는 원칙을 3가지로 정리했다. 진정한 약자 복지 실현, 국방·법치 등 국가의 본질 기능 강화, 양질 일자리 창출을 위한 성장동력 확보가 그것이다. 국정 핵심 과제에 대한 대통령의 고민과 균형 감각이 드러났다고 본다. 대통령이 "장관들은 다른 부처 예산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과거 정부의 예산, 지난해 예산과도 비교하면서 정책 우선순위의 변화, 정부 기조의 변화 과정을 면밀히 살펴야 한다"고 강조한 것에서도 예산안에 담긴 고민의 깊이를 짐작하게 된다.

이번 예산안에서 많은 우려를 낳는 부분이 연구개발 예산 삭감이다. 국가 연구개발 예산이 삭감된 것은 33년 만이다. 부존자원이 부족한데다 국방 부담이 크고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과학기술 역량이 국가의 생존에 직결되는 과제로 여겨졌다. 그래서 과학기술 분야가 이번 연구개발 예산 삭감을 바라보며 느끼는 충격도 크다.

하지만 대통령실 입장은 분명하다. 연구개발 예산에도 그동안 ‘나눠먹기’가 너무 많았고, 이번에 그 부분을 정리했다는 것이다. 과학기술계의 현실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수긍할 수밖에 없는 지적이다. 연구개발 예산이 국가 경쟁력 강화보다 과학기술계의 민생고 해결에 더 주안점을 두고 있다는 지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 말처럼 회계를 보면 기업이 보이고 예산을 보면 정부가 보인다. 이번 예산안에 담긴 정부의 모습은 일단 긍정적이다. 흔들리지 말고 원칙을 지켜가기를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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