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지난달 21일 국무회의에서 소상공인 지원과 방역 보강을 위한 14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을 의결했다. 이번 추경으로 국가채무는 1075조7000억원까지 늘어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50.1%가 된다.
정부는 지난달 21일 국무회의에서 소상공인 지원과 방역 보강을 위한 14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을 의결했다. 이번 추경으로 국가채무는 1075조7000억원까지 늘어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50.1%가 된다.

감세(減稅)는 세금의 일부를 면제하는 것이다. 세금을 깎아주면 가계의 가처분소득과 기업의 투자여력이 늘어나 경기를 활성화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하지만 ‘함정’이 되는 경우도 있다. 조세수입이 감소해 재정적자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세수기반은 한번 갉아먹기 시작하면 회복이 어렵다. 재정 확충을 위한 증세에 나서면 격렬한 저항에 부딪히게 된다. 이를 피해 공적 지출을 확대하다보면 결국 국가는 빚더미에 올라앉게 되는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문재인 정부 출범 첫해인 2017년을 기준으로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 100% 도달 시점을 2050년으로 전망했다. 당시 39.7% 수준인 국가채무 비율을 토대로 잠재성장률과 고령화·저출산 등의 변수를 더해 계산한 것이다.

하지만 국가채무 비율은 불과 5년만인 올해 10.4%포인트 오른 50.1%가 됐다. 지금과 같은 상습적인 추가경정예산 편성, 잠재성장률 하락, 예상치를 웃도는 인구감소 속도가 이어진다면 국가채무 비율 100% 도달 시점은 국제통화기금이 예상한 것보다 더 앞당겨질 수밖에 없다.

당시 국제통화기금은 대안으로 민간·공공부문 정년 연장, 근로소득세 인상, 부가가치세 인상 등을 들었다. 하지만 대선을 한달 앞둔 한국에서 국제통화기금의 조언을 공약으로 내건 대선 후보는 한 명도 없다. 오히려 선거일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표심을 의식한 각종 감세 공약을 남발하고 있다. 개미투자자를 겨냥한 증시 공약이 대표적이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지난달 27일 주식 양도소득세를 전면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앞서 내놓은 증권거래세 폐지 공약은 철회했다.

지금까지는 주식을 사고팔아 수익이 나더라도 대주주만 양도세를 냈다. 하지만 2023년부터는 주식 보유액과 지분율에 상관없이 연 5000만원 넘게 돈을 벌면 누구나 세금을 내야 한다.

개미투자자들은 그동안 주식 양도세 부과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 왔다. 증권거래세로 거래 자체에 세금을 부과하면서 그 차익에까지 소득세를 물게 하는 것은 사실상 이중과세라는 이유다. 윤 후보가 개미투자자의 표심을 제대로 읽었지만 국가재정 측면에서는 부담이 되는 것이다.

암호화폐를 비롯한 가상자산과 관련해서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윤 후보 모두 ‘묻지마’ 감세 공약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 후보는 가상자산 비과세 한도를 250만원에서 5000만원으로 올리는 것은 물론 손실금 최대 5년 이월 공제, 과세 유예 등을 공약했다. 윤 후보도 비과세 한도 5000만원 상향 조정과 과세 유예를 약속했다.

부동산 공약 역시 큰 흐름은 감세다. 이 후보는 일시적 2주택자를 포함한 1주택자 종합부동산세 완화, 취득세 감면과 월세 세액공제 확대, 보유세 부과 기준이 되는 공시가격 전면 재검토 등을 내세웠다. 윤 후보는 종부세와 재산세의 통합, 다주택 양도세 중과세율 적용 최대 2년 유예, 취득세 인하 등을 공약했다.

이처럼 전방위적 감세 공약을 쏟아내면서도 국가채무 관리, 재정운용 원칙, 지출 구조조정, 정부 수입 증대 방안에 대한 방향이나 구상은 한마디도 없다. 나라 곳간에 구멍이 나는 것은 미래세대가 아닌 현재세대의 문제가 된 것이다.

국가재정은 이미 비상인 상태다. 지난달 24일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추경안을 보면 올해 국가채무 증가분은 지난해와 맞먹는 110조4000억원이다. 정부 지출 증가율(11.4%)을 수입(7.6%)이 따라잡지 못하면서다. 여기에 정치권이 주장하는 30조원대의 추경 증액이 현실화된다면 나랏빚도 그만큼 추가된다.

이 후보는 한술 더 뜬다. 추경 증액이 여의치 않다면 당선 직후 긴급 재정명령을 통해 50조원 이상을 코로나19 지원에 쓰겠다는 것이다. 오로지 ‘더 쓰자’는 주장만 하고 있는 셈이다.

일반적으로 정치인은 자기 임기 중 인기 유지를 위해 증세 등 재정 확충이나 재정 건전성 확보는 소홀히 여긴다. 하지만 재정 방어선 붕괴는 재정파탄의 또다른 말이다. 역대 정부가 국가채무 비율 40%를 마지노선으로 여겨온 이유다. 감세는 ‘가짜 만병통치약’이라는 말도 있는데, 이는 당장 표에 유리한 감세 정책보다 규제 완화 등 ‘정공법’이 중요하다는 의미에서 나온 것이다.

저작권자 © 자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