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끼리 모여 사는 세상에는 상도(常道)가 있을 뿐이다. 왕도(王道)는 없다.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묘수를 찾다간 낭패 보기 십상이다. 지금 우리 국민연금 개혁이 딱 그렇다. 정직하고 계산이 정확한 해결책을 찾아 국민 동의를 받은 뒤 초지일관(初志一貫) 밀고 나가는 것이다.

국민연금 문제는 사실 복잡한 대수(代數)가 아니라 정직한 산수(算數) 문제다. 다만 연기금 투자 운용에 약간의 스킬(skill)이 필요할 뿐 큰길을 돌아서 갈 순 없다. 지금의 국민연금을 그대로 두면 2055년 고갈된다. 틀림없는 산수다. 그때부터 연금 수령을 하게 되는 1990년대생들이 연금을 제대로 받으려면 연금 가입자들이 수입의 30% 가량을 보험료로 내야 한다. 젊은 세대가 국민연금 제도에 불신이 생길 수밖에 없다. 결국 국민 상식에 부합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정부 자문기구인 재정계산위원회가 보험료를 더 내고 연금 받는 시기도 늦추는 국민연금 개혁 방안을 제시했다. 첫째, 현재 9%인 보험료율을 2025년부터 5~15년간 매년 올려 12~18%로 높인다. 둘째, 연금 개시 연령을 66~68세로 늦춘다는 것이다. 여기에 기금 운용 수익률을 0.5%p 혹은 1%p 올리면 연금 고갈 시기가 최대 2093년까지 연장된다는 시나리오다. 2093년 이후의 문제는 지금 상정하기 어렵다. 핵심은 보험료를 더 내고 연금 받는 시기는 늦추는 것이다. 결국 상식을 택했다. 정부는 재정계산위원회가 제시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정부안을 마련해 오는 10월 말까지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윤석열 정부가 국민연금 생존을 위해 고통 분담을 호소하며 내놓은 첫 개혁안이다.

젊은 세대가 이같은 국민연금을 불신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건전재정포럼의 조사에서 청년 세대 응답자의 67%는 국민연금이 자신들에게 불리한 제도라고 응답했다. 돈을 열심히 냈는데 나중에 국민연금을 받을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면 거부감과 저항이 생길 수밖에 없다.

연금 개혁은 역대 정부의 ‘폭탄 돌리기’였다. 인기 없는 개혁으로 표 떨어지는 게 싫은 건 당연하다. 그렇다 해도 참고 극복하면서 이겨내야 할 게 있다. 연금개혁이 그런 것이다. "보험료율 인상은 국민정서에 안 맞는다"며 다음 정부에 ‘폭탄’을 떠넘긴 문재인 정부와, 국민 상식의 길을 택한 윤석열 정부 중 과연 누가 옳은가. 국민이 판단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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