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유가가 급등하고 있는 7일 오전 서울 시내 한 주유소에 휘발유와 경유 가격이 게시돼 있다.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가 감산 연장 결정을 하면서 공급 감소 우려가 커지며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길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연합
국제 유가가 급등하고 있는 7일 오전 서울 시내 한 주유소에 휘발유와 경유 가격이 게시돼 있다.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가 감산 연장 결정을 하면서 공급 감소 우려가 커지며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길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연합

국제유가가 연중 최고치로 치솟으며 세계 경제의 복병으로 떠오르고 있다. 국제유가 급등은 인플레이션 압력을 가중시켜 각국 중앙은행의 통화긴축 고삐를 다시 죄는 것은 물론 글로벌 증시와 채권시장에도 악재로 작용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환율 불안까지 더해 질 수 있다.

최근 국제유가 급등의 ‘트리거’는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의 원유 감산 연장이다. 세계 원유의 주요 수요처인 중국의 경기회복이 더디면 원유 가격이 내려갈 수 있는 만큼 선제적으로 공급량 조절에 나섰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내년 11월 재선에 도전하는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을 겨냥한 카드라는 관측도 나온다.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러시아는 물론 사우디아라비아도 바이든 대통령이 ‘눈엣가시’ 같은 존재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바이든 대통령에게 있어 경제 분야의 최대 아킬레스건은 물가 불안이다.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셰일가스 혁명과 이란 핵합의 타결로 관계가 점차 소원해졌다. 이란 핵합의는 이란의 핵 프로그램을 평화적 목적으로 한정하고, 이에 상응해 경제 제재를 해제한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양국 관계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 회복될 여지가 보였다. 하지만 인권 외교를 중시하는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관계가 더욱 악화됐다. 사우디아라비아계 언론인이자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였던 자말 카슈끄지 피살 배후로 바이든 행정부가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를 지목한 것이 계기가 됐다.

7일 주요 외신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의 원유 감산 연장 여파로 국제유가는 배럴당 100달러를 향해 치닫고 있다. 지난 6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10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가격은 전날보다 0.98% 오른 배럴당 87.54달러에 마감했다. WTI 선물가격은 지난달 24일 이후 9거래일 연속 상승세를 보이며 지난해 11월 11일 이후 10개월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영국 런던 ICE 선물거래소에서 브랜트유 11월물 가격은 배럴당 90.60달러를 기록했다. 전날에는 90.04달러로 올 들어 처음 90달러를 넘어섰다. 올해 5~6월만 해도 배럴당 60달러선에서 안정세를 보였던 상황이 돌변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에 육박하거나 그 이상 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앞서 지난 5일 사우디아라비아 에너지부는 지난 7월 시작한 하루 100만 배럴의 자발적 감산 정책을 12월까지 3개월 연장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러시아는 기존 하루 50만 배럴 감산 방침에 더해 이달부터 하루 30만 배럴을 추가로 줄이기로 했다. 두 나라는 석유수출국기구 플러스(OPEC+) 차원에서의 감산 계획을 다시 한번 테이블 위에 올려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원유 감산 연장이 중국의 경기둔화에 따른 수요 약세 차단 외에 또 다른 ‘정치적 셈법’이 있음을 의미한다.

실제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전 세계가 에너지 비용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최대 산유국 두 곳이 가격을 올리려는 조치를 취했다"며 "이는 백악관과의 긴장을 고조시킬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다. 국제유가가 물가 상승을 부채질할 경우 바이든 행정부에 타격을 입히고, 내년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을 노리는 바이든 대통령에게 치명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미국은 예상치 못한 정유공장의 가동 중단과 재고 부족이 겹치면서 휘발유값에 비상이 걸린 상태다. 실제 미국의 휘발유 소매가격은 최근 7주 연속 올라 지난달 28일 기준 갤런당 3.813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으로 국제유가가 폭등했던 때를 제외하면 2012년 9월 이후 11년 만에 최고 수준이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바이든 대통령은 휘발유 가격을 낮출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사용하는데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적성국가라고 하더라도 외교적 해법을 통해 원유 공급 확대에 나설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에너지업계 정보분석 업체인 리스태드 에너지의 호르헤 레온 이코노미스트는 "바이든 행정부가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의 감산 연장에 대응해 할 수 있는 일은 다른 나라에서 더 많은 원유를 들여오는 것"이라며 "이란산 및 베네수엘라산 원유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자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