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법관이 자신의 진영논리가 원하는 쪽으로 이끌리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면 사직서를 내고 다른 일을 알아봐야 할 때가 된 것"이라고 했다. 이 말은 지금의 사법부를 바라보는 국민이 느끼는 불안과 불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삼권분립의 한 축인 사법부 수장의 인사청문회에서 ‘진영논리’라는 말이 나온 것 자체가 참으로 민망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 현실이다.

사법부는 이념코드형 깜짝 발탁을 통해 들어선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 하에서 그 신뢰를 잃을 대로 잃었다. 사법부가 그나마 되살아나는 길은, 이 후보자의 극히 상식적인 태도가 상급심에서부터 하급심 법원까지, 그리고 법관뿐만 아니라 법원 일반공무원들까지 확산되도록 하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사법부의 진영논리는 반드시 그 판결 결과로만 드러나지는 않는다. 그 과정 자체가 진영논리의 산물일 수 있다. 지연된 재판, 어떤 심사숙고도 복잡한 법리고민도 치열한 증거공방도 없는 사건에서, 알 수 없는 이유로 시간을 끄는 재판은 그 결과를 떠나 이미 공정을 의심받기에 충분하다.

최강욱 전 민주당 의원의 업무방해죄는 기소된 지 3년 8개월 만에 확정됐다.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 오경미 대법관이 주심을 맡아 1년을 끌다 전원합의체로 넘기고, 여기서도 시간을 보내다 김명수 대법원장 퇴임 직전 겨우 판결이 내려졌다. 오 대법관은 이 판결에서 무죄의 소수의견을 냈다. 같은 진영 사람을 봐주기 위한 재판 사보타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연된 재판은 정의가 아니다’는 말로 지적하고 말기엔 이미 대한민국 사법부는 이념형 인간들에 의한 오염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윤미향 의원이 20일 서울고등법원에서 1심에서 무죄였던 부분이 유죄로 인정되면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형이 확정되면 의원직을 상실하지만, 지금 같은 대법원의 행태로 볼 때 6개월여 남은 임기 중에 선고가 내려질지도 사실상 의문이다.

새로운 대법원장 체제가 진영논리를 벗어나 오로지 법과 상식, 정의만을 보고 가고 있음을 증명하는 길은 재판의 신속함을 도모하는 데 있다. 재판을 질질 끌고 싶은 자들에게는 ‘사직서를 내고 다른 일을 알아보도록’ 하는 사법행정이 구현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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