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의 보복 폭격으로 가자지구 시가지가 거대한 화염에 휩싸이고 있다. 팔레스타인 무장세력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으로 이스라엘인 약 900명이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 가운데 이스라엘의 보복 공격으로 사망한 팔레스타인인 수도 700명에 육박하고 있다. /AFP=연합
9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의 보복 폭격으로 가자지구 시가지가 거대한 화염에 휩싸이고 있다. 팔레스타인 무장세력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으로 이스라엘인 약 900명이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 가운데 이스라엘의 보복 공격으로 사망한 팔레스타인인 수도 700명에 육박하고 있다. /AFP=연합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1년 8개월간 힘겹게 버텨오던 세계 경제가 이번에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전쟁이라는 새로운 리스크에 직면하게 됐다.

당장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를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은 이번 전쟁으로 국제유가가 급등해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주시하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모두 원유 생산지는 아니지만 이 지역에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같은 산유국이 몰려있고, 주요 해운 항로이자 유조선의 길목인 호르무즈 해협도 인근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국제유가 급등에 따라 물가가 오르면 기준금리를 더 올릴 필요성이 커지지만 이로 인해 경제 성장이 둔화될 수 있다는 게 딜레마다. 이번 전쟁은 당사자인 이스라엘과 가자지구의 경제를 휘청이게 하는 것은 물론 글로벌 인플레이션과 성장에 모두 위협이 될 전망이다. 특히 물가 상승 억제와 경기 연착륙을 동시에 노리는 미 연준의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인플레이션과 성장 둔화 중 어느 쪽이 더 큰 골칫거리인지 선별해야 하는 숙제를 떠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도 안전지대가 아니다. 정부는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에 따른 영향이 제한적이라고 하지만 국제유가가 치솟을 경우 기업의 생산비용이 증가해 물가를 상승시키고, 생산성 저하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미 연준의 통화긴축이 장기화되고, 한국은행 역시 기준금리 인하 시기를 늦추면 저성장의 늪에 빠질 수 있다.

10일 주요 외신에 따르면 하마스의 기습 공격으로 이스라엘 화폐인 셰켈화의 가치가 급락하자 이스라엘 중앙은행은 9일(현지시간) 450억 달러(약 60조9300억원)를 투입하기로 했다. 2000억 달러 상당의 외환보유액 중 300억 달러를 매각하고, 통화스와프를 통해 150억 달러에 달하는 유동성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중앙은행이 시장 개입을 단행한 것은 지난해 1월 이후 약 1년 9개월 만이며, 외환보유액 매각은 이번이 처음이다. 베냐민 네타냐후 정부의 사법개혁 추진으로 외국인 투자자의 투자심리가 위축돼 셰켈화 약세가 이어지던 상황에서 전쟁이란 악재까지 겹치자 조치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셰켈화는 이 같은 발표 전 통화가치가 2% 넘게 하락하면서 달러당 3.92셰켈까지 내려갔다. 이는 7년 만의 최저 수준이다. 하마스의 공격 후 첫 영업일인 8일 텔아비브 증시의 TA-35지수도 전 거래일보다 6.5% 급락했다.

서울 면적의 절반 정도인 가자지구는 이스라엘의 전면봉쇄로 전기, 식량, 연료 등 240만명의 주민들이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지원마저 차단된 상태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은 재정적 지원을 중단하고 있다. 가자지구는 소규모 농업과 관광을 제외하면 이렇다할 산업이 없어 높은 실업률과 극심한 빈곤에 시달려왔다.

하마스는 지난 2006년 치러진 팔레스타인 선거에서 압승한 뒤 2007년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주도하는 파타당을 밀어내고 가자지구를 통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물론 이집트까지 가자지구를 봉쇄하면서 경제 상황은 악화일로를 걸어왔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 리스크는 글로벌 경제로 급속 확산되고 있다. 9일 뉴욕상업거래소에서 11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가격은 장중 배럴당 88달러를 넘어 전 거래일보다 4.7%가량 급등했다. 브렌트유 역시 이날 한때 4.5% 이상 올랐다. 이는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무력 충돌이 미국과 이란의 대리전쟁으로 확산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미국이 이란산 원유 수입 금지 조치를 취하고,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폐쇄하는 등 맞불을 놓으면 과거의 ‘오일 쇼크’가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중동은 전세계 원유의 3분의 1 이상을 생산하고 있다.

안전자산에 투자금이 몰리는 등 국제 금융시장도 영향을 받고 있다. 이날 금 현물은 온스당 1850달러대로 전일 대비 1% 이상 높은 가격에 거래됐다. 주요 통화 대비 달러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전장보다 0.5%가량 상승한 106.6을 기록했다. 달러에 돈이 몰려 ‘킹달러’ 현상이 심화되면 고물가와 고환율이 장기화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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