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11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유대인 공동체 지도자들과의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이스라엘의 안보와 유대인의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내 약속은 흔들리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연합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11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유대인 공동체 지도자들과의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이스라엘의 안보와 유대인의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내 약속은 흔들리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연합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배후로 이란이 거론되면서 미국의 조 바이든 행정부가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됐다. 우리나라에 동결돼 있던 이란의 원유 수출대금 60억 달러(약 8조원)를 풀어준 것이 바이든 행정부이기 때문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 자금이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될 수 없다고 밝혔지만 공화당의 공세는 갈수록 거세지는 등 정쟁으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내년 11월 미국 대선의 ‘상수’가 되고 있는 도널드 트럼트 전 대통령이 이 문제를 집중 공략하고 있다. 내년 3월 공화당 경선을 앞두고 유세에 한창인 그가 이번 이슈를 호재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당초 국내 기업들은 동결 자금 해제로 한국과 이란이 새로운 경제협력 관계에 들어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미국 정치권의 이 같은 정쟁으로 오히려 ‘불똥’이 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란은 원유 매장량 세계 4위, 인구 9000만명의 국가로 국내총생산(GDP)을 기준으로 하면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은 중동 제2의 경제대국이다. 한때 우리나라의 20위권 수출 대상국으로 무역 규모가 2011년 175억 달러에 달했지만 최근에는 사실상 교역이 끊긴 상태다.

12일 주요 외신에 따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7일 아이오와주 유세에서 "미국은 수감자 교환을 대가로 이란에 60억 달러를 지급했다"며 "이란의 지원을 받고 있는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할 수 있었던 것도 이 자금 때문"이라며 경쟁자인 바이든 대통령을 겨냥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언급한 미국과 이란의 수감자 교환이 이루어진 것은 지난 9월 중순이다. 이란에서 풀려난 미국인 5명이 수도 테헤란을 벗어났고, 비슷한 시각 미국에서 석방된 이란인 2명도 카타르 도하에 도착했다. 카타르의 중재로 성사된 수감자 교환이다.

이 같은 수감자 교환의 조건이 바로 우리나라에 4년 동안 묶여 있던 이란의 원유 수출대금이다. 이 자금은 스위스를 거쳐 카타르로 송금되도록 설계됐다. 우회적인 지급 방식이다. 우리은행과 IBK기업은행에는 2019년 5월 이후 동결된 이란 중앙은행 명의의 원유 수출대금 60억 달러가 예치돼 있었다. 문재인 정부 때 이란은 지속해서 이 자금을 달라고 요청했지만 미국의 반대로 송금하지 못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란이 의약품과 식량 등 인도적 목적에 사용하는 경우에 한해 자금에 접근할 수 있도록 카타르 정부가 통제하는 조건을 내걸었다. 하지만 당시에도 미국이 테러리스트로 지정한 이슬람 혁명수비대의 손에 들어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이란은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강성 반미(反美) 국가가 됐고, 핵 개발로 서방의 제재를 받아왔다.

이란의 원유 수출대금을 동결한 것은 트럼프 행정부다. 지난 2018년 5월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란 핵합의(JCPOA) 탈퇴를 일방적으로 결정했다. 이란 핵합의는 이란이 보유할 수 있는 우라늄 농축용 원심분리기의 수량과 성능을 제한하는 대신 각종 제재 조치를 해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2015년 7월 미국을 포함한 유엔(UN)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과 독일, 그리고 이란이 합의한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를 깨면서 이란 중앙은행을 제재 명단에 올렸고, 우리나라에 개설돼 있던 은행 계좌도 동결했다. 2021년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과 이란은 핵합의 복원 협상을 벌였고, 이란은 우리나라에 묶여 있던 자금의 해제를 요구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하마스의 배후로 언급되고 있는 이란을 대상으로 언제든 자금을 재동결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지난 10일 카타르 은행에 보관돼 있는 이란의 원유 수출대금 60억 달러에 대해 "언제든지 다시 동결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란이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에 개입했다는 증거는 보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란의 원유 수출대금이 미국 정치권의 정쟁으로 부상하면서 우리나라와 이란의 경제협력 관계 복원에도 먹구름이 드리우게 됐다. 이란에서 한국산 제품의 인기는 높다. 이란산 원유의 가성비도 좋다. 이란산 경질유는 나프타 함량이 70% 이상으로 12%에 불과한 두바이산 중질유보다 높기 때문이다. 석유화학산업이 발달한 국내 산업구조상 기초 재료인 나프타의 수요는 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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