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필섭
공필섭

청명하지만 쌀쌀한 가을이다. 이내 겨울이 올 것이라는 것을 알리는 듯하다. 천고마비라는 풍요롭고 온화한 가을 분위기는 사라진 듯해 아쉽다.

스산한 가을 밤하늘 공허하게 걸린 달을 보고 있자니 이백의 ‘월하독작’(月下獨酌)이 떠오른다. 흩어져 있는 희미한 별빛 아래 윤동주의 ‘별헤는 밤’도 떠오른다. 아름다운 것 같지만 한껏 에이는 향을 가진 시를 읊조리기에 좋은 요즘이다. 여기에 어묵국물처럼 따끈한 상태로 마실 수 있는 위스키가 있다면 ‘참 좋은 친구’다.

열전도가 잘되는 구리 잔 같은 것에 위스키를 담고 뜨거운 물에 중탕하면 된다. 가끔 스틱으로 저어주면 더 빨리 따끈하게 데워진다. 그대로 마셔도 좋고 니트 잔에 옮겨 마셔도 좋다. 차가운 두 손으로 잔을 감싼 채 뜨거운 차를 먹듯 음미하면 된다. 추웠던 몸도 마음도 눈 녹듯 사라질 것이다.

피트 성분이 강한 위스키는 피하는 것이 좋다. 주유소 기름냄새처럼 역해지기 쉽다. 버번의 바닐라향도 거부감이 들 정도로 변질된다. 글렌리벳 12나 15·글렌모렌지 10·글렌그란트·그렌고인 그리고 하쿠슈·치타·야마자키 등 피트가 매우 적거나 없는 위스키들이 적합하다. 사실상 브랜디지만 일반적으로 위스키로 여겨지는 헤네시 등의 꼬냑은 중탕할 경우 향이 폭발적으로 풍부해진다. 따끈하게 마시는 꼬냑은 정말 색다른 경험이 될 것이다.

이맘 때면 누구나 추억의 조각들이 떠오를 것이다. 즐거웠거나 혹은 씁쓸했거나. 보온 잘되는 힙플라스크에 중탕한 위스키를 담아 품속에 넣고, 스산하다 못해 시린 밤하늘 보며 읊조려 보는 건 어떨까. 단 한 줄로 유명한 유치환의 시 ‘낙엽’(너의 추억을 나는 이렇게 쓸고 있다)처럼 "너와의 추억을 나는 이렇게 마시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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