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내년 총선 모드로 돌입한 모습이다. 한국조사협회는 최근 정치선거 여론조사들이 난립하면서 오·남용되고 있는 것을 예방하기 위한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그 가운데 가장 주목할 내용은 부정확한 여론조사 난립의 주된 원인이었던 ARS(자동응답전화) 방식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대신 조사원에 의한 전화면접조사만 실시하겠다는 것이다. 또 조사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응답률 10% 이상의 조사결과만 공표하겠다고 했다. 통상 2~3% 수준인 전화면접조사 응답률에 비춰 결코 쉽지 않은 목표치다. 그만큼 조사비용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여론조사 정확도와 신뢰도를 높이겠다는 조사협회의 결정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것은 사람들의 생각을 정량화해서 수치로 표현하는 여론조사가 반드시 지켜야 할 조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특히 사람들의 정치적 선택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정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무분별하게 남용되고 있는 여론조사 보도들이 정화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여론조사의 문제점은 조사 자체보다 언론사 보도 과정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더 많을 수 있다. 여론조사 결과는 경쟁 관계를 수량적 지표로 제공한다는 점에서 언론사들 입장에서 아주 좋은 기사거리가 될 수 있다. 특히 대표적 상업주의 보도인 ‘경마식 보도’(racing-horse reporting)에서 자주 인용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소수점 이하의 조사 결과를 반올림해 정수로만 표기하기로 한 것은 바람직한 결정이다. 실제로 적지 않은 언론이 형식적으로 조사 오차범위를 밝히고는 있지만, 내용에 있어서는 사소한 차이까지 침소봉대해 경쟁적으로 보도하는 경우가 있다. ‘오차범위 내’라고 하는 것은, 차이가 적다는 의미가 아니라 통계적으로 전혀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애써 감추고 있는 것이다.

승자에게 편승하는 밴드왜건 효과(bandwagon effect)나 반대로 약자를 지지하는 언더독 효과(underdog effect)에도 불구하고, 정치 여론조사 보도를 법으로 허용하는 이유는 유권자들의 합리적 선택에 도움이 되는 유용한 정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론조사 결과가 유용한 정보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조사 자체도 정확해야겠지만, 보도 내용 또한 정확하고 객관적이어야 한다. 어쩌면 여론조사가 정상적으로 기능하기 위한 책임은 조사기관보다 언론사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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