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국민연금 개혁안을 발표했다. 이번 개혁안은 재정 안정에 무게를 두고 보험료율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방향성을 제시하면서, 소득대체율에 대해서는 ‘조정 검토’라고 조심스럽게 표현했다. 이 개혁안은 국무회의 심의와 대통령 승인을 거쳐 이달 말까지 국회에 제출된다. 그러면 국회는 연금개혁특별위원회를 중심으로 개혁안을 논의하게 된다.

이번 개혁안은 세대별 형평성을 고려해 보험료율 인상 속도를 연령 그룹에 따라 차등하며, 인구변화를 감안해 적정 보험료율을 검토한다고 밝혔다. 명목소득대체율 역시 기초연금, 퇴직연금 등 다층노후소득보장의 틀 속에서 구조개혁 논의와 연계해 검토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언론은 이번 개혁안에 대해 비판적이다. 보험료율이나 소득대체율 등 구체적인 숫자가 빠진 방안이라는 것이다.

정부의 개혁안에서 구체적인 숫자를 빠진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국회의 연금개혁 특위가 구조개혁 논의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가 주도적으로 숫자를 제시하기는 어려운 조건이다. 특히 이 정부 출범 후 민주당이 국정 운영에 전혀 협력하지 않고 사사건건 발목을 잡고 시비를 걸어왔던 것을 고려하면 보건복지부의 이런 조심성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정부의 개혁안이 구체성을 결여할 수밖에 없는 가장 본질적인 이유는 국민연금을 둘러싼 변수가 너무 가변적이기 때문이다. 급여 수준을 미리 정해놓는 확정급여방식(DB)을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보험료 수준을 정해 놓고 납부한 보험료에 이자를 더해 지급받는 확정기여방식(DC)으로 전환할 것인지도 판단이 쉽지 않다. 재정여건에 따라 연금액을 깎는 자동안정화장치의 도입 여부도 논란거리다.

국민연금을 개혁한다는 것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설계한다는 것과 비슷한 의미다. 인구·경제성장·고용과 정년·안보와 외교·세대 갈등·이민까지 연관되지 않은 문제가 거의 없다. 이렇게 복잡한 변수를 무시하고 정부가 칼로 두부 자르듯 개혁안을 들이민다면 그것이야말로 오만이고 섣부른 행동일 것이다.

이번 개혁안은 ‘더 많이 내고 적게 받는 방향 전환’을 분명히 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이 대전제 위에서 구체적인 내용을 채워가야 한다. 민주당도 대한민국 운명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진지하게 논의에 동참할 것을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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