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복거일 작가는 건국대통령 이승만을 다룬 대하소설 <물로 쓰여진 이름>(전5권)을 내놓았다. 특이한 제명을 붙인 까닭에 대해 작가는 "사람들의 과오는 청동에 새겨지지만 공헌은 물에 쓰여진다"는 영국 문호 세익스피어의 말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했다.

작가의 말은 역대 국가지도자를 보는 우리 사회의 잘못된 시각에 대한 풍자 같기도 하다. 특히 정치지도자들의 과오는 왜곡하거나 부풀려서라도 크게 떠들어대지만, 공로는 덮거나 침묵해 버리는 병적 징후를 꼬집는 표현인지도 모른다.

영화감독 권순도 씨가 우리 사회의 이같은 잘못된 흐름에 영화로 맞서고 있다. 그가 제작·감독한 영화 ‘기적의 시작’이 바로 그것이다. 그는 이승만 건국대통령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업적 중심 스토리로 엮어냈다. 흔히 유행하는, 한 정치인의 입신양명을 그리는 신파조 영화가 아니다. 이승만 박사의 ‘업적’에 철저히 중점을 둔 다큐멘터리다. 또 그가 크리스천으로 변해 오늘에 이르는 면모를 새롭게 인식케 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권 감독은 이승만 박사 활동 중에 일어난 사건이나 공헌들에 대해 두드러지는 분야를 부각시켰다. 5년 동안의 미국 유학생활, 활동무대였던 독립협회, 만민공동회 운동 등 자료를 수집해 사진과 내레이션을 적절히 배합했다. 거기에 관련 학자나 증인들을 소환, 웅변케 함으로써 실감과 감동을 동시에 일으키고 있다. 극영화가 아닌데도 극영화를 능가하는 호소력을 발휘했다. 마치 잘 준비된 차트 브리핑을 듣는 것처럼, 이승만 생애와 업적을 놓치지 않고 오롯히 수용할 수 있게 했다. 한때 TV 드라마를 주름잡았던 임동진(지금은 목사) 씨의 이승만 대역도 표정과 말씨를 통해 영화가 전하려는 메시지를 충분히 잘 살렸다.

80분 짧은 시간이지만, 영화는 이승만에 대한 잘못된 시각을 바로잡고 건국대통령으로서 그의 실체와 고뇌를 실감케 해줬다. 특히 죽음을 앞둔 마지막 부분에서 나라 걱정하는 모습과 유언 같은 말에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다만 아쉬운 것은 업적에 치중하다보니 이승만 대통령이 아니고서는 대한민국 수립이 불가능했다는 실체적 진실을 부각하는 데는 다소 미흡했다. 그러나 한미상호방위동맹 부분은 증인 활용으로 동맹 70년을 맞는 올해의 상황 윤리를 잘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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