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직장인 근로소득이 해당하는 과표구간이 15년째 변화가 없으면서 사실상 정부가 증세 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게티이미지
대부분의 직장인 근로소득이 해당하는 과표구간이 15년째 변화가 없으면서 사실상 정부가 증세 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게티이미지

과세표준(과표)은 세금을 부과하는 기준을 말한다. 여기에 공제를 제한 후 세율을 곱해 세금을 산정한다.

이 같은 과표가 어느 구간에 속하느냐에 따라 세율이 달라지기 때문에 과표구간이란 말을 쓴다. 우리나라 소득세의 경우 8개 구간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소득액이 높아질수록 세율이 높아지는 누진세를 적용하고 있다. 근로소득을 비롯한 이자·배당 등의 종합소득, 퇴직소득, 양도소득 등에 적용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국 가운데 우리나라보다 과표구간이 많은 국가는 멕시코·스위스·룩셈부르크 등 3개국에 불과하다. 지난 2016년까지 우리나라 소득세의 과표구간은 5개 였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8개로 늘었다. 기존 1억5000만원 초과 구간을 △1억5000만원 초과~3억원 이하 △ 3억원 초과~5억원 이하 △5억원 초과~10억원 이하 △10억원 초과 등 4개로 쪼개고, 각각의 구간에 더 높은 세율을 적용했다.

과표구간 쪼개기를 통한 고소득자 증세는 ‘넓은 세원, 낮은 세율’이라는 조세원칙은 물론 과표 단순화라는 세제의 기본 방향성에도 역행한다. 이 같은 과표구간 쪼개기는 고소득자를 겨냥한 ‘핀셋’ 증세가 목적이다. 더욱 큰 문제는 대부분의 직장인 근로소득이 해당하는 과표구간을 그대로 둠으로써 사실상 정부가 증세 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1200만원 이하(세율 6%) △4600만원 이하(15%) △8800만원 이하(24%)는 지난 2008년 이후 15년째 변화가 없다. 이렇게 장기간 과표구간이 고정돼 있으면 소득 증가에 비해 소득세 증가분이 훨씬 커지는 ‘누진세 효과’가 발생한다.

납세자 소득이 더 높은 과표구간으로 밀려 올라가면서 세 부담이 더 커지는 것이다. 사실 소득 증가 자체도 물가 상승을 감안하면 실제로 더 벌어들인 돈은 많지 않다.

10일 국세청 국세통계연보와 국회 입법조사처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08년 연봉 4000만원을 받은 직장인은 최저 세율 8%를 적용받아 연간 50만원 안팎의 소득세를 낸 것으로 분석됐다. 이 직장인이 올해 8000만원의 연봉을 받는다면 최고 세율 24%를 적용받아 449만원의 소득세를 내야 할 것으로 추산된다. 연봉은 2배 올랐지만 세금은 8.9배가 오르는 셈이다.

연봉이 물가 상승률 정도만 인상돼 실질임금이 15년 전과 같은 경우에도 세 부담은 크게 늘어난다. 통계청이 발표하는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 2008년부터 2021년까지 31.4% 올랐다. 한국은행이 올해 2% 중후반대 물가 상승률을 예상하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올해까지 약 35%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를 임금 인상률로 적용하면 연봉 4000만원 직장인의 15년 후 연봉은 5388만원으로 계산된다. 이 경우 최고 세율 24%로 약 156만원의 세금을 내야 한다. 소득의 증가 폭은 35%인 반면 세금 인상 폭은 3배에 달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물가 상승률을 반영해 정기적으로 과표구간을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실제 국회 입법조사처는 과표구간에 물가 상승률을 연동시킬 것을 제안했지만 정부는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미국·영국·캐나다·프랑스 등은 물가 상승률과 연동해 과표가 조정되는 과세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물가 연동을 적용하지 않고 비정기적으로 정부가 세율을 조정한다. 하지만 이는 정교한 방식이 아닌데다 선거 등의 정치 이벤트에 악용될 우려가 있다.

실질적인 세 부담 유지를 전제로 하면 짧게는 3년, 길게는 5년 간격으로 물가 상승분을 반영해 과표구간을 우상향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물론 물가 연동이 정답은 아니라는 목소리도 있다. 물가 연동과 세 부담 능력이 정확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것만으로 규격화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세 부담 능력을 검토하고, 과표구간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은 당위론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일각에서는 대통령 직속 위원회 등의 기구를 통해 정기적으로 과표구간 조정을 논의하고, 이를 토대로 결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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