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내부 갈등이 또 불거진 모양이다. 현 상황은 더 꼬이고 복잡해진 것 같다. 발단은 지난해 대통령선거 직후부터 시작된 인사 잡음이다. 지난해 3월 정권 교체가 된 후 대통령직인수위에 파견된 국정원 일부 직원이 문재인 정부 때 역할을 한 인물이란 의견이 제기돼 복귀했다. 김규현 원장이 지명된 직후 비서실장으로 임명된 인물이 하루 만에 교체된 적도 있다. 이같은 내부 갈등이 미처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올 들어 김규현 원장과 권춘택 1차장 사이에 인사를 둘러싼 내홍이 밖으로 불거졌다. 이 때문에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나서 사태를 수습했다. 바로 6개월 전 일이다.

그런데, 권춘택 1차장이 최근 직무감찰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권 차장이 해외 업무 수행 과정에서 기업체와 관련한 의혹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이 대통령실에 제기됐고 김 원장이 감찰을 지시했다고 한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갈등을 봉합했지만 6개월 전 내홍이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것이다. 6개월 전 윤대통령은 김 원장이 올린 인사안을 반려한 적 있다. 이런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일부 1급 간부가 면직됐다. 당시 원장이 옷을 벗어야 할 사유였지만 윤 대통령은 김 원장을 재신임하면서, "국가 안보와 국민 안전을 위해 헌신하라"고 당부했다. 그럼에도 원장을 비롯한 고위 간부들이 사태를 깔끔하게 정리하지 못하고 여기까지 온 것이다.

정보기관에는 불변의 원칙이 있다. ‘상대는 나를 전혀 몰라야 하고 나는 상대를 죄다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얼마 전 세계 최고 수준의 이스라엘 모사드가 ‘촌놈 집단’에 불과한 하마스에게 당한 배경도 크게 보면 이 원칙에 충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물며 국정원 내부의 인사 잡음까지 외부에 알려지는 상황은 도무지 용납하기 어렵다.

현재의 국정원은 지나치게 정쟁화되어 있다. 길게 보면 김영삼 정부 때부터다. 김대중 정부 때는 고도의 전문가들이 쫓겨나고 호남 출신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고속승진한 일이 비일비재했다. 이때부터 국정원이 ‘망하는’ 길로 들어서 문재인 때 꼭지점에 이르렀다. 지금은 용단을 내릴 시기다. 멀리 내다보면서 국정원 대개혁에 나서야 한다. 국정원을 새로 창설한다는 비장한 각오로 나서지 않으면 총체적 난국을 돌파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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