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은 감사원과 함께 대통령 직속 행정기구다. 헌법상 대통령중심제 하에서 내각을 견제하며 중심을 잡는 역할을 한다. 대통령의 직무 수행 중 가장 중요한 부서라는 의미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정원에 대한 실망이 큰 것 같다. 대통령실은 26일 김규현 국정원장과 권춘택 1차장·김수연 2차장 사표를 수리했다. 사실상 경질이다. 신임 1차장에 홍장원 전 영국 공사가 임명돼 당분간 원장 직무대행을 맡게 됐다. 2차장에는 황원진 전 북한정보국장이 임명됐다. 이들은 새 원장이 올 때까지 잠시 직무를 대행할 뿐이다.

김규현 원장과 권춘택 1차장 경질 배경은 언론을 통해 이미 알려져 있다. 요약하면 국정원 내부 갈등이 인사로 표출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겉으로 드러난 현상에 불과하다. 본질이 아니다. 결정적 오류는 지난해 3월 9일 정권 교체 후 국정원에 대한 비전이 제대로 제시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국정원의 중장기 비전 설계부터 완성한 다음, 그 설계도에 맞게 인재를 선발했어야 옳았다. 하지만 국정원 비전 설계도도 없었고 언론과 국민을 설득하는 공론화 작업도 없었다. 이것이 지난 1년 6개월간 국정원 내부 갈등의 근본 배경이다.

국정원은 곪아터진 지 이미 오래 됐다. 김영삼 정부 때부터 정보기관에 발을 들여놓지 말았어야 할 정치꾼들과 그 하수인들이 줄줄이 입사했다. 김대중 정부 때는 특정 영역에서 오래 경험을 쌓은 전문가들이 대거 쫓겨났다. 호남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승진했다. 노무현·문재인 때는 간첩을 잡아도 청와대 지시로 풀어주는 일도 있었다. 심지어 이명박 정부 때는 오전에 국정원 실국장 회의가 끝나면 회의 내용이 야당 원내대표에게 보고됐다. 국정원 기밀이 야당에 보고되면, 친북좌파 국회의원 보좌관→친북 매체→민노총 등 종북 단체→지하 간첩망을 거쳐 북한 대남사업부에 보고된다. 이 보고서는 당연히 당시 김정일·김정은에게 올라간다.

국정원은 이미 20년 넘게 정치꾼들, 종북단체, 북한 대남사업부 등에 발목이 잡혀 있었다. 정보기관으로서의 기능, 대통령 직속 기구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 됐다는 이야기다. 국정원이 정보기관으로 온전히 역할을 하려면 이 사슬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 먼저 국정원의 비전 설계부터 한 뒤 새 원장을 앉혀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자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