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업계에선 오래 된 ‘경험칙’이 전해온다. 여객기가 사고 날 확률과 사고가 났을 때 승객이 생존할 확률은 동일하다는 것. 항공기 사고가 발생하면 살아날 확률이 그만큼 낮다는 이야기다.

2일 오후 일본항공(JAL) 516편 여객기가 화염에 휩싸인 채 도쿄 하네다 공항 활주로를 달렸다. 승객 367명 승무원 12명, 도합 379명이 탑승했다. 홋카이도 삿포로를 출발한 ‘에어버스 A350’ 기종의 이 여객기는 하네다 공항 착륙 직전 일본 해상보안청 항공기와 충돌했다. 해상보안청 항공기도 공중에서 불이 붙었다. 하지만 JAL 여객기 기장은 화염에 휩싸인 비행기를 침착하게 활주로에 안착시켰고, 승무원 12명은 ‘90초룰’에 따라 승객 367명 전원을 탈출시켰다. 부상자 약 17명, 승객과 승무원 전원이 살았다. 이는 기적이다.

‘90초 룰’은 44인승 이상 비행기는 모든 승객이 90초 이내 탈출할 수 있도록 설계돼야 여객기 검증을 통과할 수 있도록 한 규정이다. 비상구 확보, 산소 마스크 착용, 탈출 슈터 내리기, 승객 탈출의 전 과정이 90초 내 완료돼야 한다. 항공사의 ‘90초 룰’ 시험은 어린이에서 노인까지 고르게 분포된 승객들로 가득찬 만석 상태에서 실시된다. 모든 상업 항공기는 ‘90초 룰’ 시뮬레이션을 통과해야 항공기 인증을 받을 수 있다. 핵심은 승무원의 인도에 따라 모든 승객들이 하나같이 움직여 주는 것이다. 위기의 순간 승객들의 질서와 공동체 의식이 삶과 죽음을 가른다.

JAL 516편 승객들은 항공기에 불이 붙은 상황에서 탈출 슈터를 타고 빠져 나왔다. 탈출 슈터는 출입구에 부착된 미끄럼틀에 팽창 가스를 투입해 지상에 내린다. 비상구에서 뛰어내릴 때 슈터 바닥이 뚫리면 안 되니까 하이힐 등은 재빨리 벗어야 한다. 이 모든 행동이 90초 내에 완료돼야 한다.

이 순간은 영화 ‘타이타닉’ 마지막 장면에서 승객들이 비상 구명정을 타려는 순간보다 더 긴박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JAL 516편 362명 승객과 12명 승무원들 모두가 ‘영웅’인 셈이다. ‘하네다의 기적’을 보면서 역설적으로 우리나라 야권 586 국회의원들의 온갖 불법과 생떼가 떠오른다. 만약 이들이 탑승했다면 불타는 여객기 속에서 승객들이 과연 살아남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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