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명적 동맥경화가 걸린 우리 사회에 가장 날카로운 메스를 대야”
“민주화 운동 했던 86운동권이 정치권력을 잡아왔는데 나라는 왜 이 모양?"
“전체주의적 사고로 기득권화된 운동권 집단, 사라져가고 있는 기회의 공정”

18일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사회운동활동가들이 모여 개최한 원탁회의에서 김성회 전 대통령실 종교다문화비서관이 발언하고 있다. /주최 측
18일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사회운동활동가들이 모여 개최한 원탁회의에서 김성회 전 대통령실 종교다문화비서관이 발언하고 있다. /주최 측

지난 18일 여의도에 자리한 한 널찍한 카페에서는 내로라하는 사회운동활동가들이 모여 원탁회의를 개최했다. 그들이 내건 슬로건은 요즘 가장 핫한 시국적 주제인 ‘타락한 운동권 정치 청산’이었다. 원탁회의라는 말은 우리에게 익숙한 듯하면서도 어딘가 생소한 개념이다. 특히 시민사회운동이나 정치활동에서 사용될 때는 더 그렇다. 

원탁회의라는 것이 둥근 탁자에 여러 사람들이 둘러앉아 안건을 의논하는 방식인 것이고, 직사각형태의 탁자에는 상석과 좌장, 그리고 그로부터 가까운 자리일수록 지위가 높아지는 서열이 존재하는 것과는 달리, 둥근 형태여서 특별히 서열을 정하기 어렵다는 물리적 특징을 활용한 것임은 누구나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이처럼 회의 참여자들의 공평한 의사 표현과 평등한 발언 비중을 보장한다는 취지가 원탁회의의 존재 이유이자 방식인 것이다. 

인간이 언어로 의사소통을 시작한 이래로 둥글게 모여 앉아 현안을 논의하는 것은 늘상 있는 일이었을 테다. 더구나 어떤 지도자의 독단적인 결단보다 모든 구성원들의 합의가 주는 의사결정의 정당성은 그 강도 면에서 비교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원탁회의가 중세 유럽 전설 속 아서왕의 원탁 기사단에서 유래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 다만 원탁 기사단이라는 이름에 나오는 ‘원탁’은 적어도 회의에서만큼은 모든 기사들이 평등하다는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지녔다. 이는 기사단 내에서 서열이나 계급에 관계없이 모든 기사가 동등한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실질적인 의미의 원탁회의, 그러니까 역사적으로 전환기적 사건이 발생했는데, 그 촉발이 바로 원탁회의였다고 할만한 알려진 것들 가운데 가장 이르다고 할 만한 사례는 1886년 영국의 현실 정치판에서 열린 조지프 체임벌린(Joseph Chamberlain)이 주도한 원탁회의를 들 수 있다. 이 원탁회의는 당시 영국 정치계를 뜨겁게 달구던 아일랜드 자치문제와 그로 인해 심각한 분열의 길을 걷던 자유당을 배경으로 한다. 당시 자유당 내에서는 아일랜드 자치문제를 둘러싼 의견 차이가 심화되면서, 아일랜드에 대한 자치권 부여에 찬성하는 입장과 반대하는 입장 사이에 극심한 갈등이 발생했다. 자유당의 급진파 지도자였던 체임벌린은 이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고 당 내부의 분열을 극복하기 위안 방안으로 원탁회의를 제안했던 것이다. 이러한 체임벌린의 접근 방식은 복잡한 사회적·정치적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는 데 있어 여전히 유효한 사례로 남아 있음은 분명하다.

그 이후 원탁회의가 독립운동, 사회운동, 정치활동 같은 영역에서 두각을 드러낸 역사적 사건들이 꽤 있다. 1930년대에 영국에서 인도 독립문제를 논의한 영국-인도 원탁회의, 1947년 제2차 세계대전 뒤 파키스탄의 인도로부터 분리를 결정한 인도-파키스탄 원탁회의, 1949년 인도네시아의 네덜란드로부터 독립이 논의된 네덜란드-인도네시아 원탁회의 등은 잘 알려져 있다. 또 1948년 미국 뉴욕 세네카 폴스에서 여성의 투표권과 법적지위 개선을 위한 대규모 논의의 장으로 열린 여성권리운동 원탁회의, 1960년대 미국의 민권운동 기간 동안 열렸던 다양한 원탁회의 등도 거론할 만하다. 환경보호를 위한 각종 원탁회의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원탁회의에서 주대환 씨가 발언하고 있다. /주최 측
원탁회의에서 주대환 씨가 발언하고 있다. /주최 측

이러한 나름의 깊은 역사성과 실질적 성과를 자랑하는 원탁회의. 그러나 한국에서는 가부장적 권위주의와 연공서열에 의한 수직적 의사결정 문화로 인해 원탁회의가 접목되기 쉽지 않은 환경임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래서 이번에 사회운동활동가들이 모여 개최한 원탁회의는 그리 홍보되지 않은 첫 회의였음에도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었다.

사회운동활동가 원탁회의는 민주화운동동지회(회장 함운경), 신전대협(의장 김건), 행동하는자유시민(상임대표 박소영), 바른사회시민회의(대표 박인환), 전진한국(대표 한경주), 국민노조(사무총장 김준용) 등 보수주의 시민운동 단체들이 수평적이고 협력적 위치에서 서로 머리를 맞대는 논의의 한마당이다. 이들이 표방하는 것은 영(young)보수, 스마트(smart)보수이지만, 그렇다고 세대교체에 방점을 찍은 것은 아니다. 구성 단체들의 면면들만 보아도 20~30대의 젊은 활동가들에서부터 60~70대의 중장년활동가들이 고르게 포진돼 있다. 그들의 말대로 중요한 것은 “나이가 아니라 내용”이니까.

이들의 문제의식은 어디에서 출발할까? 그 답은 취지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은 “대한민국의 기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믿는다. 그렇지만 지금으로서는 미래가 그다지 밝아 보이지는 않는다고 보고 있다. 그 이유는 “검은 먹구름이 대한민국의 하늘을 가리고 있기” 때문이다. 검은 먹구름이란 바로 “기술의 변화, 산업 구조의 변화, 인구 구성의 변화에 따른 노동개혁도, 연금개혁도, 교육개혁도 제때 이루어지지 않는” 우리 사회의 치명적인 동맥경화 현상이다. “많은 청년들이 결혼과 출산을 포기한 지 오래되었지만, 기득권을 지키려는 일부 노동조합과 손잡은 운동권 패거리 정치가 필수 개혁을 가로막고, 자연스러운 세대교체와 순환을 가로막고 있어서” 동맥경화가 진행된 것이라고 진단한다. 

동맥경화의 증상은 이렇게 나타난다. “운동권 정치인들의 반(反)대한민국적인 세계관, 무능과 도덕적 타락도 심각하지만, 그들의 특권 의식과 독선은 동료시민의 다양한 견해를 존중하는 가운데 토론과 타협으로 공존의 길을 찾아가는 성숙한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이러한 고질병적인 동맥경화를 수술하려면 날카로운 메스를 대야 한다. “세계 정세의 급변이 민주공화국의 존립을 위협하는 시대에 타락한 운동권 정치의 오만한 방종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어서” 이들 스마트 보수주의 활동가들이 메스를 들고 나서기로 한 것이다. 

이들이 청산하고자 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건설하겠다고 나섰던 사람들이 어느 틈엔가 정치계에서 주류를 형성하며 한자리 씩 꿰찬 뒤 기득권 세력이 되어, 마치 뒤에서 사람의 머리채를 잡아당기듯, 우리 사회를 역행시키는 반동적·패거리적 패권주의다. 그런데 이런 활동 목표는 이들이 평소에 해오던 사회운동 활동 영역과는 좀 동떨어져 있다. 이들의 행동에 기폭제가 된 것은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 위원장이 우리 정치계와 시민사회에 던진 화두였다. 

원탁회의에서 김건 신전대협 의장이 발언하고 있다. /주최 측
원탁회의에서 김건 신전대협 의장이 발언하고 있다. /주최 측

지난 12월 26일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으로 지명된 한동훈 위원장의 취임 일성 가운데 하나는 “운동권 특권 세력” 청산이었다. 그는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이 운동권 특권세력과 개딸 전체주의 세력과 결탁해서 자기가 살기 위해서 나라 망치는 것 막아야 한다.”고 국민들에게 호소했다. 민주당의 운동권 특권세력이 "386부터 686이 되도록 썼던 영수증을 또 내밀며 대대손손 국민 위에 군림"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초거대 야당인 민주당이 민생과 국정은 팽개치고 “일주일에 세 번, 네 번씩 중대 범죄로 형사 재판을 받는” 이재명 대표를 지키는 방탄 역할만 기껏 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상대당에 대한 이런 식의 공격은 정치판에서야 다반사이지만, 한동훈 위원장의 일성이 특히 시민사회운동가들을 마음에 울림을 준 것은 패당의 이익을 우선하는 ‘선당후사’가 아닌 국민의 삶을 가장 중시하는 ‘선민후사’ 정신의 실천이었다. “지역구에 출마하지 않겠다. 비례로도 출마하지 않겠다." 말하자면 일신의 영달도, 패당의 이익도 아닌, 국가와 사회, 국민의 이익을 가장 우선시하겠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는 진정성 있는 자세 덕분이었다. 어떤 정당이 선거를 앞두고 위기를 맞을 때면 비상대책위원회라는 것을 만들어 돌아선 지지자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한 국면전환을 시도한다. 그 수장으로 초빙된 사람은 그러한 책무를 지는 대신 선거에서의 과실(果實)에 대한 분명한 몫이 보장된다. 쉬운 말로 유리한 지역구의 공천이라든가 당선 가능권의 비례대표 순번을 챙기는 것은 당연시되는 것이다. 한동훈 위원장은, 세간의 뻔한 기대와는 달리, 비유하자면, ‘합당한 과실수취권’을 과감하게 포기한 것이고, 이런 신선하고 충격적이며 비정치적이기까지 한 승부수가 시민사회 활동가들의 호응을 이끌어냈다고 볼 수 있다.

시민운동활동가 원탁회의는 이 논의의 한마당을 구성한 단체의 대표자들이 행사의 주최자로서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행사의 의미와 임하는 각오, 참여 의의 등을 발표하는 인사말로 시작됐다. 사회는 주대환 플랫폼 ‘통합과 전환’ 운영위원장이 맡았다. 원탁회의의 꽃은 다양한 연령, 다양한 분야의 활동가들이 86운동권 청치 세력의 타락과 우리 사회를 퇴행시키는 패거리 정치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쏟아낸 5분 발언대였다.

86운동권의 타락상에 대해 첫 포문을 연 것은 86운동권이 학생운동에서 떠난 후 4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뒤 학생운동의 새 자리를 찾고자 고민하는 신(新)전대협이었다. 김건 신전대협 공동의장은 “타락한 기득권이 되어버린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라”고 일갈했다. 그는 86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을 향해, “과거에 누구보다 앞장서서 사회의 정치를 비판한 학생들이었는데, 왜 30년 가까운 세월 정치권력을 잡아왔는데도 왜 대한민국의 정치가 나아지지 않았는가?”라고 물었다. 그러면서 “독재 타도, 부패 타도를 외치던 그날의 마음가짐을 기억한다면, 부패한 기득권을 이제 그만 내려놓고 물러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성회 사단법인 한국다문화센터 대표는 “민주화 운동이 필요한 시대에 민주화 운동을 한 것은 잘못이 아니다. 86운동권의 문제는 시대정신을 따라잡지 못하고 과거 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이분법적 선민의식으로 채워져 있는 그 정신세계가 문제다.”라고 비판했다. 86운동권 출신이지만 민주당 운동권 세력과는 어울리지 않고 레인보우 다문화어린이합창단 창단 및 운영과 같은 다문화운동을 전개해온 김성회 대표는 윤석열 정부 초 대통령실 종교다문화비서관으로 일했으며, 이번 총선에서는 충북의 보은군·옥천군·영동군·괴산 지역구에 일찌감치 출사표를 던져놓고 있다.

전완식 전진한국 의장은 “86운동권은 20대에 성장을 멈춘 60대 피터팬 신드롬에 불과하다”며 신랄한 비판의 포문을 열었다. 그는 “정치 기득권을 수십 년 독점하고 향유하며, 시대의 거대한 흐름을 틀어막은 86귀족들의 퇴장을 명령한다”며, “87체제를 끝내고, 86세대를 넘어서, 청년 미래로 전진하는 것은 시대정신이며 사명”이라고 시민사회에 호소했다.

이은혜 순천향의대 교수는 “운동권이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을 만들어 건강보험에 빨대를 꽂았다”고 하면서, 그 결과 “건강보험이 붕괴되고 있는데, 그렇게 되면 나와 같은 개천의 용은 더 이상 나오기 힘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반 서민 가정에서 가장이 아파 누웠는데 의료보험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자녀들이 마음편히 공부하기 어려워진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개천의 용이 더 많이 나오는 열린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건강보험 개혁이 필수적이고 운동권의 빨대인 해당 법률을 폐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원탁회의에서 이은혜 순천향대 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주최 측
원탁회의에서 이은혜 순천향대 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주최 측

조용술 ‘공정과 정의’ 위원장은 “우리 사회가 운동권식 전체주의 문화에 포로가 되어 있다”며, “이미 운동권 집단은 전체주의적 사고로 하나의 기득권화가 됐고, 그 안에서 기회의 공정이 사라지고 있다. 시민들이 ‘납득’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수 있는 사회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이러한 문화를 만드는 데는 누구라도 예외가 될 수는 없으며, 전체주의적 사고로 위계의 힘으로 눌러버리는 문화를 청산하고 공정과 정의의 가치가 일상화되는 사회를 만들어가자고 호소했다.

대전에서 법률사무소를 운영하며 86운동권 정치세력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 왔던 김소연 변호사는 “86운동권 정치세력과 같은 적폐 패당은 대를 이어 계속 양산되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이준석”이라며, 자신의 “숙명”은 “이준석 같은 제2의 386들이 등장하지 못하도록 입구컷을 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교통공사에서 MZ 노동조합을 만든 올바른노동조합 송시영 위원장은 처음 노조를 설립했을 때 “기존 노동권의 선동과 모략, 비방으로 힘들었다”며, 그렇지만 그럴 때마다 노동조합의 본연의 역할을 하는 노동운동 문화를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극복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노동자 단체가 일도 하지 않고, 노동 공백을 일으키며 파업하는 것은 범죄행위”라며, “인사권을 행사하는 것도 공정성을 해치는 짓”이라고 비판했다. “노동조합이 오직 노동단체의 본질만을 추구하는 것이 당연한데도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정치권과의 야합과 정치세력화된 기존 노동단체들의 잘못된 활동 때문”이라며, MZ 세대 노동조합은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외에도 전완식 한성대학교 ICT디자인학부 교수, 박소영 국가교육위원회 위원,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 등 여러 분야별 전문가들과 사회운동가들이 등단하여 38운동권 특권정치에 대해 성토를 이어갔다.

한편, 시민운동활동가 원탁회의는 이번 여의도 행사의 성공적 개최를 기반으로 매주 전국의 주요 대도시를 순회하는 원탁회의 전국투어를 계획해 두고 있다. 다음 주와 그다음 주는 대구와 대전에서 차례로 원탁회의가 개최될 예정이다. 행사에 참석한 일반 시민인 김성구씨는 “보수 진영 행사에서 이렇게 생기발랄하고 희망이 넘치는 회의는 처음 본다”며 “앞으로 이런 행사가 전국 대도시에서 이루어진다니 새로운 토론 문화가 자리 잡아가고, 더불어 보수주의 시민사회운동도 새로운 도약의 길을 마련하길 기대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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