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출판기념회 등을 통한 정치 자금 수수를 금지하는 법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한 위원장은 최근 "출판기념회 형식을 빌어서 정치 자금을 받는 관행을 근절하는 법안을 발의하고 통과시키겠다"며 "민주당이 찬성하면 바로 입법될 것이고, 반대하면 이번 총선에서 우리가 승리해서 통과시키겠다"고 말했다.

현행 정치자금법에 의하면 개인이 정치인에게 기부할 수 있는 후원금 한도는 대통령 후보 1000만원, 국회의원 등은 500만원으로 제한된다. 그러나 출판기념회에서는 책 정가와 상관없이 두세 권만 가져가도 수십만 원에서 수백만 원이 담긴 봉투를 책값으로 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책값은 모금 한도가 없고, 선거관리위원회 신고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김영란법에도 걸리지 않는다.

출판기념회 한 번에 몇천만 원 정도는 기본이고 집권당 상임위원장급이면 몇억 원이 들어오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선거일 90일 전 금지 규정만 있으니 ‘검은돈’ 창구로 안성맞춤이다. 의원회관 사무실에 카드 단말기를 설치해 시집을 판 의원, 장롱 속 3억 원을 출판기념회에서 받은 책값과 부친상 조의금이라고 한 의원 등 요지경 속이다. 출판기념회에 나오는 책 대부분이 대필작가 작품이란 것은 비밀도 아니다.

한 위원장의 선언은 이런 낡은 관행을 척결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하지만 저항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당장 같은 국민의힘 정치인들부터가 진심으로 호응할지 의문이다. 이런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 문제를 단순한 선거 전략이 아니라 정치 혁신 운동 차원에서 진심으로 추진해야 한다. 그래야 정치권도 유권자도 공감한다.

이번 제안은 불체포특권 포기, 금고 이상 확정시 세비 반납, 귀책 보궐선거 무공천, 국회의원 50명 감축에 이어 한 위원장이 다섯 번째로 내놓은 정치개혁 공약이다. 모두 오랫동안 논의되어 왔던 내용들이고 정당성과 근거도 충분하다. 하지만 아직 2% 부족하다. 그건 국회의원 세비와 보좌진 규모의 혁명적인 감축이다. 이 내용이 나와야 한다.

87체제 성립 이후 대한민국에는 정치권에 기생하는 룸펜들이 너무 많아졌다. 정치는 시장 질서를 뛰어넘는 게임의 룰이다. 정치가 커지면 경제는 상대적으로 위축된다. 정치 비만인 대한민국 구조를 바꾸는 혁신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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