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투표제도의 위헌 여부를 가려달라는 헌법소원심판청구를 한 청구인들이 중심이 되어 4·10 총선 전에 효력정지가처분 결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1차적으로 지지자 1만 명의 서명도 함께 헌재에 전달한 이들은 이날부터 가처분 결정이 있을 때까지 릴레이 시위를 벌이겠다고도 한다. 위헌이든 합헌이든 머뭇대지 말고 공적인 판단을 내려달라고 촉구하는 국민의 소리를, 헌재는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어차피 공은 헌재로 넘어갔다. 본안심판 회부까지 결정된 마당에 헌재가 이를 피해갈 수는 없다. 기왕에 헌재가 어떤 식으로든 한번은 판정을 내려야 한다면 그 시기는 4·10 총선 전이어야 한다. 현행 사전투표제에 아무 문제가 없으니 그냥 가도 된다거나, 아니면 이번 총선에서 잠정적으로나마 중단하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사전선거제도를 도입하도록 하자는 판단이 나와야 한다.

사전투표제를 둘러싼 논란은 점점 증폭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헌재가 침묵을 지키고 그대로 총선이 진행된다면, 선거의 공정성과 입법기관 결성의 정당성을 둘러싼 국론 분열과 혼란이 극심해질 것임은 명약관화하다. 이를 예상하면서도 헌재가 몸을 사린다면, 역사에 죄를 짓는 것은 물론 현행 법에 의해서도 직무유기와 탄핵사유가 될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 위기를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법치의 위기다. 법치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는 주범은, 권력을 사유화하고 정파적 이익 추구의 수단으로 삼는 데 어떠한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는 정치집단이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은 공범들은 본연의 임무와 역할을 망각하거나 이를 의도적으로 저버리는 공직자들이다. 이른바 ‘검수완박’ 관련 결정에서 헌법재판소는 관련 법안의 공포 과정에서 절차적 위반은 있었지만 공포행위는 적법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법리 대신 정치를 택한 결정으로 국민의 공분을 샀다.

헌재는 민주공화국 존립 근거가 되는 선거제도의 헌법 합치성 여부를 둘러싼 판단을 내려야 할 처지에 있다. 그 결론의 향방은 둘째치고 결론 내리는 자체마저 미적대는 꼴을 보여서는 안 될 것이다. 제대로 된 역사의 한 획을 그을 것인지, 아니면 역사의 오점을 남기고 국민의 돌팔매를 맞을 것인지, 헌법재판관들은 잘 생각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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