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김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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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총생산(GDP) 규모를 넘나드는 과도한 가계부채는 경제 악순환의 고리가 된다. 빚을 갚느라 소비가 위축되고, 자영업자는 도산하며, 이들에게 돈을 빌려준 금융사는 위기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계부채가 한국 경제의 ‘뇌관’이 될 것이라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지난해 우리나라의 가계부채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크게 감소했다. 코로나19와 초저금리 환경을 거치면서 유례없이 빨리 불어난 우리나라의 가계부채가 최근 높은 금리 속에서 세계 정상급 속도로 줄고 있는 것이다. 시장이 경원하는 고금리의 역설인 셈인데,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정이 이 같은 흐름에 가속도를 붙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지난해 8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80%를 넘어가면 경제 성장이나 금융 안정을 제약할 수 있는 만큼 현재 100% 이상인 이 비율을 90%를 거쳐 점진적으로 80%까지 낮추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는데, 100% 밑으로 떨어뜨리는 1차 과제가 올해 달성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민간부채의 다른 한 축인 기업부채는 지난해 말까지 꺾일 기미 없이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늘어 대조를 보이고 있다.

3일 국제금융협회(IIF)의 ‘세계 부채’ 최신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00.1%로 세계 34개국 중 가장 높았다. 이어 홍콩 93.3%, 태국 91.6%, 영국 78.5%, 미국 72.8% 등이 뒤를 이었다. 우리나라는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 이래 4년째 불명예스러운 ‘세계 최대 가계부채 국가’ 타이틀을 지키고 있다. 특히 조사 대상 국가 가운데 유일하게 가계부채가 GDP를 웃돌았다.

그럼에도 희망적인 것은 1년 전과 비교해 우리나라의 가계부채 비율이 104.5%에서 100.1%로 4.4%포인트 하락했다는 것이다. 이는 83.1%에서 78.5%로 4.6%포인트 줄어든 영국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것이다. 특히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정점을 찍었던 2021년 3분기의 105.7%보다 5.6%포인트 낮아졌다.

이 같은 추세로 미뤄 올해 GDP 성장률이 한국은행 전망대로 2.1%를 기록하고,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가계대출 증가율이 목표치인 1.5∼2.0% 내에서 관리되면 가계부채 비율은 올해 중 100% 아래로 떨어질 공산이 크다. 이 경우 우리나라 가계부채 비율은 2020년 3분기 100.5%를 기록하며 100%를 뚫고 올라간 이후 약 4년 만에 90%대로 내려오게 된다.

연초 은행권의 가계대출 증가세도 주춤하면서 가계부채 비율 100% 하회 실현에 힘을 싣고 있다. 5대 은행의 지난달 28일 기준 가계대출 잔액은 696조371억원으로 지난 1월 말의 695조3143억원보다 7228억원 늘었다. 지난해 5월 이후 10개월 연속 불었지만 월간 증가폭이 1월의 2조9049억원보다 크게 줄어 지난해 6월의 6332억원 이후 8개월 만에 최소 수준을 보였다.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관리 압박에 따라 최근 은행들이 대출 금리를 올린데다 지난달 26일부터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에 스트레스 DSR 규정이 적용되면서 대출한도까지 줄어든 만큼 부동산 시장이 다시 들썩이지 않는 한 당분간 가계대출이 급증하기는 어려운 환경이다.

다만 기업부채의 경우 계속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지난해 4분기 기준 우리나라의 GDP 대비 비(非)금융기업 부채 비율은 125.2%로 세계 34개국 중에서 네 번째로 높다. 우리나라를 웃도는 국가는 홍콩 258.0%, 중국 166.5%, 싱가포르 130.6% 뿐이다. 더구나 우리나라 기업부채 비율은 1년 전인 2022년 4분기의 121.0%보다 4.2%포인트 더 올랐다.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중국, 인도에 이어 5위 수준의 오름폭이다.

우리나라 정부부채의 GDP 대비 비율은 45.1%로 22위를 기록했다. 중하위권 수준이다. GDP, 즉 경제 규모와 비교해 정부부채가 가장 많은 나라는 일본으로 229.9%에 달한다. 그 뒤를 싱가포르 173.1%, 미국 119.9%, 아르헨티나 91.1% 등이 잇고 있다. 우리나라 정부부채의 증가 속도는 중상위권에 속한다. 1년 전인 2022년 4분기의 44.4%와 비교해 증가폭이 0.7%포인트로 16위를 기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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