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韓 ‘뒤집힌’ 송환 결정

美 자국 인도 계속 추진 시사...권 “美, 결정 바꿀 권한 없다”
檢, ‘폭락’ 수사 급물살 예고...국내 투자자 보상 ‘실낱’ 기대
韓 ‘암호화폐’ 걸음마 단계...어떤 시장이든 시행 착오 겪어

‘테라·루나’ 폭락 사태의 핵심 인물 권도형(33) 테라폼랩스 대표가 지난해 2월11일(현지시간) 몬테네그로 수도 포드고리차 지방법원으로 향하고 있다. /몬테네그로 일간지 비예스티=연합
‘테라·루나’ 폭락 사태의 핵심 인물 권도형(33) 테라폼랩스 대표가 지난해 2월11일(현지시간) 몬테네그로 수도 포드고리차 지방법원으로 향하고 있다. /몬테네그로 일간지 비예스티=연합

가상 화폐 테라·루나 [TERRA(LUNC)] 코인 폭락 사태의 주범으로 알려진 권도형(33세, 1991.09 서울생) 전 테라폼랩스 대표가 지난 주 7일 몬테네그로 법원에서 한국으로 송환이 결정된 가운데, 미국이 권 씨에 대해 자국 인도를 추진하겠다고 밝히자 권 씨 측은 "미국에는 그럴 기회나 권한이 없다"고 밝혔다.

몬테네그로 법원은 지난 달 2월21일 권 대표의 미국 인도를 결정한 바 있다. 한편 미국 법무부는 권 대표의 한국 송환이 결정된 날에 공식 성명을 내고 "미국은 관련 국제·양자 간 협약과 몬테네그로 법에 따라 "도 권 (Mr.Do Kwon)"(권도형)의 인도를 계속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9일(현지시간) 몬테네그로 최대 일간지인 비예스티는 권씨의 몬테네그로 현지 법률 대리인인 고란 로디치·마리야 라둘로비치 변호사가 보낸 성명을 공개하고, "범죄인 인도 절차를 규정한 법률에 따라 미국이나 한국 모두 (몬테네그로) 고등법원의 결정에 항소할 기회나 권한이 없다"며 "범죄인 인도에 관한 유럽 협약과 몬테네그로와 미국 간의 범죄인 인도 협약 모두 범죄인 인도 절차는 국내법(형사사법공조법)에 따라 진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몬테네그로 법원의 결정에 미국과 한국 법원 모두 항소할 수 없다는 의미로, 지난주 7일 몬테네그로 고등법원에 의해 한국 송환이 결정된 권 대표를 미국 측에서 자국으로의 송환을 계속해서 추진하겠다는 언급에 대한 것으로 해석된다. 한국 법무부와 미국 법무부가 제3국에서 범죄인 인도 문제에 대해 양국간 협정에 따라 사전합의하에 진행되는데, 세계적으로 약  60조원으로 추산되는 시가총액의 증발의 주인공인 권 대표의 초대형 금융 사고에 대해 한국 법무부가 미국 법무부와 첨예하게 다퉈 이기는 경우는 처음으로 기록된다. 

9일 몬테네그로 일간지 비예스티는 "고등법원의 결정은 내려졌으며, 권도형의 변호사가 항소할 수 있는 기한은 월요일(11일, 현지시간)에 끝난다"며 "항소하지 않으면 결정이 최종 확정되고, 권도형은 이 기한이 지나면 곧바로 한국으로 송환될 수 있다"고 전했다. 한편 작년 2023년 10월 몬테네그로 정권 교체로 새로 취임한 법무장관은 "미국이 우리의 중요한 대외 정책 파트너"라며 권 대표를 미국으로 송환할 의사를 꾸준히 내 비쳤다.

몬테네그로 외무부 또한 권씨의 인도국이 미국에서 한국으로 바뀐 것과 관련해 이 결정이 미국과의 외교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따라서 권도형은 몬테네그로 법원의 한국행이 7일 최종 결정됨에 따라 가능한 조속한 시일인 3월중에는 한국행 비행기를 탈 것으로 보인다.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의 변호인인 고란 로디치 변호사가 지난해 2월16일(현지시간) 몬테네그로 수도 포드고리차에 있는 포드고리차 지방법원에서 열린 위조 여권 사건 재판이 끝난 뒤 법원 앞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의 변호인인 고란 로디치 변호사가 지난해 2월16일(현지시간) 몬테네그로 수도 포드고리차에 있는 포드고리차 지방법원에서 열린 위조 여권 사건 재판이 끝난 뒤 법원 앞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

한편 경제사범 최고 형량이 약 40년이며, 가상화폐가 증권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는 기준과 법도 전무한 한국과 달리, 미국은 개별 범죄마다 형을 합산하는 병과주의를 택하고 있어 혐의가 전부 유죄로 인정될 경우 100년 이상의 징역형도 가능하다. (아직 유죄확정이 아닌) 혐의 내용에 대한 추정 손실액이 2022년 5월 6일부터 12일까지 일주일 동안 UST와 루나 시가총액이 450억 달러(57조7800억 원) 증발했다고 블룸버그 통신이 2022년 5월15일(미동부 현지 시각) 암호화폐 정보사이트 ‘코인게코’를 인용한 보도를 통해 볼때 최소 100년 이상이라고 분석된다. 

피해 배상을 놓고 보면 권씨가 한국으로 송환되는 것이 국내 투자자들에게는 소송 진행 등의 측면에서 유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권씨가 미국으로 인도될 경우 재판 등을 거쳐 투자자들에 대한 배상이 이뤄지더라도 한국 피해자들에 대한 구제는 후순위로 밀릴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국제금융 관련 법무 전문가들은 모든 피해자에게 손해액을 다 갚아줄 수는 없겠지만, (권씨가 한국에 송환될 경우) 국내 피해자들이 배상받기는 조금 더 유리해질 수 있다. 

권씨가 한국으로 송환되면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부가 맡아온 관련 수사도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권씨가 입국하는 대로 신병을 확보해 조사에 돌입할 전망이다. 검찰은 권씨가 테라 코인을 설계·실행한 핵심 인물인 만큼 테라를 설립하고 코인을 발행해 폭락사태를 맞기까지의 전 과정에 대해 강도 높은 조사를 벌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권 대표는 고액의 법률 자문을 받아 수사·재판을 지연시킬 수 있는 각종 수단을 활용할 여지가 있다. 가상화폐·코인등 관련법이 미약한 가운데 위헌 법률 심판 제청, 보석 청구 등 다양한 전략을 활용하여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최대한 오랫동안 끄는 전략을 취할 것이라는 견해가 나오는 이유이다. 

권도형 대표의 한국 송환 결정으로 국내 루나 코인 투자자들은 투자 실패에 대한 회한과 동시에 보상 측면에서의 기대가 복합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2022년 5월 초까지 테라폼랩스 권도형 대표는 미국에서 루나 백만장자(Luna Millionaires)라 표현되며 자산이 27조원에 육박하며 뉴욕타임즈에 까지 소개되던 (제2의 ‘일론 머스크’라고 칭송 받던) 천재였다. 권도형 대표는 서울의 대원외고를 졸업한 뒤 바로 미국으로 건너가 컴퓨터 공학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명문인 스탠퍼드대학에 진학했다.

그는 졸업 후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에서 일했다. 그후 2018년 신현성 티몬 창업자와 테라폼랩스를 공동 창업했다. 그리고  테라폼랩스가 운용하는 ‘테라 프로젝트’는 이미 주요 글로벌 블록체인 생태계로 자리 잡았다. 루나의 시총은 2022년 2월 10일 기준 225억 달러, 원화로는 약 27조원이다. 전체 암호화폐 코인 중 7위의 시가총액을 자랑하고 있었다. 창업후 단 3년만에 이룬 쾌거였던 것이다. 

이때 권도형 대표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로부터 소환장을 받았다. SEC가 문제 삼은 건 미러 프로토콜의 자산들이 미국 증시에 상장된 빅테크들의 주가를 추종하기 때문에 증권성이 인정되는데도 SEC에 등록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스탠포드대학 재학중에 한국으로 돌아와 만기 전역한 권 대표는 SEC 측에, ‘자신은 한국 국적이기 때문에 SEC의 소환에 응할 의무가 없다’는 요지의 소송을 제기했다. 슈퍼 갑이라는 SEC에 반기를 든 셈이다. 전 세계 블록체인계가 당시 이 소송에 주목하고 있었다. 당시 테라는 스테이블 코인 유에스티로 블록체인계의 1등 기축통화에 도전 중이었다. 

테라의 공동 창업자인 신현성 티몬 창업자와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 2022년 2월 사진. /테라 홈페이지
테라의 공동 창업자인 신현성 티몬 창업자와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 2022년 2월 사진. /테라 홈페이지

한국은 현재도 암호화폐를 투기 수단으로 여기고 있다. 사회 분위기가 그렇고 정부의 규제가 그렇다. 한국정부는 테라폼랩스 권도형 대표를 폰지 사기범으로 구속을 검토하고  있다. 클라우드 컴퓨팅 기반으로 빅데이터 프로세싱 개발 전문의 세계적인 소프트웨어사인 미국의 마이크로스트레티지는 지난해 2023년 12월 기준으로 비트코인 12만2478개를 보유하고 있다.

미국의 금융인이며 금본위주의자이자 방송인인 피터 쉬프((Peter Schiff)는 비트코인을 두고 ‘폰지 사기 계획’이라며 비트코인 보유자들을 ‘튤립 마니아’라 표현한다. 잘 알려진 대로 피터 쉬프의 아들 스펜서 시프 (Spencer Schiff)는 비트코인 투자자이다. 스펜서 시프는 자신의 트위터에 ‘아버지인 피터가 비트코인을 방송에서 ‘폰지 사기’라고 비판할 때마다 나는 비트코인을 추가 매수한다’는 메시지를 올리기도 했다. 

테라폼랩스 권도형 대표를 폰지 사기범으로 구속을 검토하고  있는 한국정부는 비트코인도 폰지 사기로 취급하는 지 궁금하다. 인공지능과 블록체인 기술에 기반한 암호화폐는 아직도 초입 단계에 있다. 어떤 시장이든 초기에는 온갖 실험이 행해진다. 참여자들은 고위험·고수익 (high risk & high return)을 기대하면서 시장에 경험이 축적되며 시장은 스스로 진화한다.

한때 세계적인 줄기 세포 복제 연구를 진행했던 황우석 박사의 연구는 MBC PD수첩이 제기한 의혹으로부터 시작되어 이른바 주류 의학계의 조사위원회로 부터 연구 조작으로 판명이 나면서 그동안 축적한 그의 모든 연구가 한국에서 부정되며 연기처럼 사라지고, 그의 첨단 연구 성과물들은  미국·일본·영국등에서 씨앗을 뿌리며 관련 생명공학 산업들이 꽃을 맺으며 그들 나라에서 세계적인 바이오 엔지니어링 산업과 첨단 인력 고용을 창출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한국 정부는 암호화폐 시장이 경험을 쌓고 진화할 기회를 2022년도에 아예 없앴다. 실제로 중국과 한국을 제외하고는 ICO(Initial Coin Offering, 유가증권시장에 코인 상장)를 전면 금지하는 국가는 없다. 국제금융에서 암호화폐가 차지하는 비중은 급격하게 커지고 있으며 이른바 대세이다. 장기적으론 한국 자체에서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산업이 발전할 토양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는 점이 크게 우려된다. 정부는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분야의 천재들을 전부 한국에서 떠나게 할 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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