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김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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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안전자산의 대명사인 금과 대표적 위험자산인 비트코인의 가격이 동시에 치솟고 있다. 안전자산과 위험자산 가격은 반대로 움직인다는 통념이 깨지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경기침체나 지정학적 리스크가 부각되는 경우 위험자산에서 안전자산으로 돈이 옮겨간다. 이로 인해 위험자산 가격은 내리고, 안전자산 가격은 오른다. 반면 호황기에는 위험자산에 돈이 몰리면서 반대 현상이 일어난다. 하지만 근래에는 거의 모든 자산의 가격이 오르는 ‘에브리싱 랠리’가 펼쳐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시장에 금리 인하 기대감이 퍼지면서 투자 성향이 반대인 금과 비트코인이 함께 오르는 것으로 보고 있다. 금리가 내리면 달러도 약세를 보일 것이란 예상에 금값이 올랐고, 금리가 낮을수록 오르는 속성이 있는 비트코인 역시 동반 강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지난 수십년간 세계의 기축통화로 군림해온 달러의 패권이 저물면서 에브리싱 랠리가 가시화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과도한 부채로 미국 정부가 달러를 찍어내면서 통화가치 하락에 따른 불신을 키운다는 것이다.

10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 7일 기준 설정액 10억원 이상 금 펀드 12개의 1주일 평균 수익률은 6.07%에 달했다. 같은 기간 46개 테마 펀드 가운데 가장 높은 수익률을 올린 것이다. 금 상장지수펀드(ETF)의 상승세도 만만치 않다. 한국거래소가 발표하는 KRX 금 현물지수를 기초지수로 하는 ACE KRX 금 현물 ETF의 1주일 수익률은 5.53%를 기록했다.

이 같은 금 펀드와 금 ETF의 수익률 상승세는 국제 금값이 오른 영향이다. 국제 금값은 지난 8일 기준 온스당 2161.55달러로 6거래일 연속 상승했다. 이에 국내 금값도 덩달아 뛰어 같은 날 KRX 금시장에서 금 1㎏ 현물의 종가는 g당 9만1740원을 기록하며 시장 개설 이후 처음으로 9만원을 넘어섰다.

비트코인은 지난 8일 미국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에서 장중 한때 7만199달러까지 치솟았다. 비트코인 가격이 7만 달러를 돌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처럼 비트코인 가격이 급등한 가운데 일명 ‘고래’(whale)라고 불리는 큰손도 늘어나고 있다.

블록체인 시장조사기관 룩인투비트코인에 따르면 지난 8일 현재 비트코인 1000개 이상 보유한 큰손들의 고유 주소(unique address)는 2104개로 집계됐다. 이는 1998개였던 지난 1월 19일에 비해 106개 늘어난 것이다. 지난 1월 19일 4만1000달러에 거래됐던 비트코인이 75% 가까이 올랐음에도 고래의 고유 주소가 100개 이상 늘어난 것은 그만큼 추가 가격 상승을 기대하며 보유한 비트코인을 팔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역사적으로 금과 비트코인 가격은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다. 미국에서 비트코인 선물거래가 시작된 2017년 비트코인 가격은 1000달러대에서 1만9000달러대까지 수직 상승했다. 이처럼 비트코인으로 자금이 쏠리면서 금값은 2017년 9월 1350달러선에서 그해 말 1250달러선으로 내려갔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에도 이 같은 흐름이 이어졌다. 코로나19 충격이 글로벌 금융시장을 덮친 2020년 금은 최고의 안전자산으로 떠오르며 연초 1500달러에서 8월 2000달러까지 급상승했다. 반면 비트코인은 2020년 2월 초 1만 달러에서 3월엔 5000달러로 반토막이 났다.

하지만 이젠 더 이상 안전자산과 위험자산 가격이 반대로 움직인다는 공식은 작동하지 않게 됐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 때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 풀렸던 달러가 여전히 넘치는 상황에서 통화가치마저 약세를 보이는 것이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올해 통화긴축을 끝내고 이르면 6월쯤 금리를 내릴 것이란 전망이 강해지자 자금이 추가적인 달러 약세를 예상하며 금과 비트코인으로 몰리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미국 정부의 부채는 34조 달러에 달한다. 이처럼 미국 정부의 과도한 부채 때문에 달러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는 것도 에브리싱 랠리의 요인으로 거론되고 있다. 미국 정부의 빚이 100일마다 1조 달러씩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달러의 대체재인 금과 비트코인이 오르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달러 패권이 약화되고 있는 신호탄으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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