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조원 규모의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을 두고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의 강 대 강 대치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조감도. /HD현대중공업
8조원 규모의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을 두고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의 강 대 강 대치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조감도. /HD현대중공업

8조원 규모의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을 두고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의 강 대 강 대치가 이어지고 있다. 관할 부처인 방위사업청이 HD현대중공업 직원의 KDDX 군사기밀 유출 사건과 관련해 HD현대중공업의 입찰 제한을 하지 않기로 방침을 세우면서 경쟁사 한화오션이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HD현대중공업을 고발한 것. 현재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은 각각 ‘임원이 개입된 조직적 범죄’, ‘판결문 짜깁기 왜곡’이라고 주장하며 팽팽히 맞서고 있다.

두 기업의 갈등은 모기업 한화그룹과 HD현대그룹 간 신경전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특히 일각에서 막역한 사이로 알려진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과 정기선 HD현대그룹 부회장의 경영 능력을 확인 할 첫 시험대가 될 것이란 관측까지 나오면서 재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11일 방산·조선업계에 따르면 KDDX는 오는 2030년까지 7조8000억원 규모의 6000톤급 미니 이지스함 6척을 도입하는 사업을 말한다. 해군력 강화라는 궁극적인 목적도 있지만 엔진을 제외한 모든 부품을 국산화해 개발한다는 점에서 특별한 상징성을 가진다.

KDDX 사업은 개념설계와 기본설계, 상세설계·선도함 건조, 후속함 건조 등의 순으로 진행되고 있다. 앞서 개념설계는 한화오션의 전신 대우조선해양, 기본설계는 HD현대중공업이 각각 수주했다.

통상 군함 건조 사업에선 기본설계를 수행한 기업이 수주에 유리한 위치를 차지한다. 현행 방위사업관리 규정상 기본설계를 맡은 기업이 잠정 전투용에 적합하다는 판정을 받게 될 경우 다음 단계인 상세설계, 선도함 건조까지 모두 진행하기 때문이다.

이에 KDDX 기본설계를 수주한 HD현대중공업이 이번 사업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지만, 사업 초기 HD현대중공업 임직원들의 군사기밀 누설 의혹이 불거지면서 한화오션에도 기회가 열렸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앞서 지난 2020년 HD현대중공업은 KDDX 기본설계 사업 과정에서 임직원 9명이 군사기밀 누설 혐의로 기소돼 지난해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들은 해군본부를 방문했다가 대우조선해양이 제출한 사업 관련 자료를 불법 촬영하고, 이를 회사 내부 서버에 공유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로 인해 HD현대중공업은 방사청으로부터 오는 2025년 11월까지 정부 주도의 특수함 사업 참여 시 1.8점 감점이라는 ‘페널티’를 받고 있다.

지난 2020년 KDDX 기본설계 수주전에서 불과 0.0565점 차이로 한화오션이 고배를 마신 것을 감안하면 이번 건조 수주전도 한화오션이 승리로 끝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실제 지난해 8월 벌어진 울산급 배치3(BATCH-III) 5·6번 호위함 사업에서도 한화오션이 HD현대중공업을 따돌리고 수주에 성공한 것 역시 감점 요인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화오션이 KDDX 수주전에서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음에도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HD현대중공업을 고발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는 지난달 방사청이 HD현대중공업의 KDDX 입찰 제한 여부를 결정하는 계약심의위원회에서 임원 개입 여부를 확인할 수 없었다는 이유로 징계 없는 행정지도, 즉 HD현대중공업의 KDDX 입찰 참여가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구승모 한화오션 컴플라이언스실 변호사는 최근 기자회견을 통해 "HD현대중공업 직원들의 범행 방법은 임원 등 경영진의 개입 없이는 계획과 실행이 불가능하다"면서 "명백한 임원의 개입이 확인돼야 방사청도 제재할 수 있다고 판단해 수사를 요청했다"고 말했다.

HD현대중공업도 반박 입장문을 내며 맞대응에 나섰다. HD현대중공업 측은 "한화오션이 내세운 근거는 이해하기 어려운 억지 주장에 불과하다"면서 "한화오션이 발표한 내용은 정보공개법 위반 소지가 있을 뿐 아니라 수사 기록과 판결문을 일방적으로 짜깁기해 사실관계를 크게 왜곡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번 사태가 향후 특수선 수출을 고려한 두 기업 간 ‘기 싸움’의 일환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국내 특수선 시장이 점차 줄어드는 상황에서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이 향후 수출 시장 선점에 도움이 될 KDDX 수주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올해 3000톤급 잠수함 2~3대를 도입을 목표로 하는 폴란드의 ‘오르카 프로젝트’와 캐나다가 추진 중인 장거리 3000톤급 디젤 잠수함 12척 사업 발주가 시작될 전망이다. 이를 두고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은 사업 참여를 위해 협력 기업을 물색하거나 관련 포럼에 참석해 유치 활동을 전개하는 등 첨예한 물밑 수주전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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