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김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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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 경제가 수출과 생산을 중심으로 회복 흐름을 보이고 있지만 체감경기는 여전히 싸늘하다. 이처럼 실물경제의 주요 지표와 체감경기가 괴리를 보이고 있는 것은 부문별로 균형 있는 회복이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실물경제의 주요 지표와 체감경기 간 격차가 불가피한 구조적 요인도 한몫하고 있다.

높은 반도체 의존도의 경제구조가 대표적이다. 전후방 산업의 연관효과가 큰 자동차나 조선 등과 달리 반도체는 성장과 고용에 대한 파급효과가 상대적으로 적다. 반도체발(發) 경기 개선은 ‘착시효과’가 클 수 있다는 의미다. 주요국보다 비중이 큰 자영업자의 상황이 주요 통계의 ‘사각지대’에 있는 것도 실물경제의 주요 지표와 체감경기의 괴리를 불러오는 요인이다.

최근 경기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된 반등의 초입 단계일 뿐 회복을 논하기는 이르다는 관측도 나온다. 실물경제의 주요 지표가 호조를 보이고 있는 것은 기술적 반등일 수 있으며, 기본적으로 금리 인하가 시작돼야 체감경기까지 살아나는 본격적 경기 회복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17일 통계청에 따르면 전산업생산지수는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 석 달 연속으로 전월 대비 플러스를 기록했다. 전산업생산지수가 석 달 연속 증가한 것은 2021년 6월~2022년 1월 이후 24개월 만에 처음이다. 특히 올해 1월 제조업 생산은 지난해 12월 대비 1.4% 줄었지만 전년 동월 대비로는 13.7% 늘면서 큰 폭의 회복세를 보였다. 올해 1월 제조업 평균가동률 역시 72.0%로 전월 대비 0.1%포인트 상승했다.

이는 반도체를 중심으로 수출 회복세가 뚜렷해진 덕분이다. 지난달 수출은 524억1000만 달러로 전년 동월 대비 4.8% 늘었다. 반도체가 67% 늘어나는 등 15대 주요 수출품 가운데 6개 품목이 증가했다.

고용시장도 큰 틀에서는 견조한 편이다. 지난달 15세 이상 취업자는 2804만3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32만9000명 늘면서 두 달 연속으로 30만명대의 증가폭을 유지했다. 고용률은 61.6%로 1982년 7월 월간 통계 작성 이후 2월 기준으로 가장 높았고, 실업률은 3.2%로 2월 기준 역대 2번째로 낮았다.

하지만 장바구니 물가, 청년층의 일자리, 민간소비와 건설경기 등 국민 실생활과 직결된 부문에서는 싸늘한 기류가 이어지고 있다. 당장 장바구니 물가에 비상등이 켜진 상태다. 2월 생활물가지수는 지난해 동월 대비 3.7% 상승했다. 특히 신선과실 가격이 41.2% 치솟는 등 신선식품의 물가 상승률이 20.0%에 달했다.

취업자 수가 30만명 이상 늘어나는 상황에서도 2월 청년층 취업자는 6만1000명 줄었다. 16개월 연속 감소세다. 경제의 허리 격인 40대 취업자도 6만2000명 감소해 20개월째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인구 고령화와 정부의 직접일자리 사업 등으로 60대 이상 취업자가 29만7000명 늘어난 것과 대조적이다.

지난해 4분기 민간소비는 전기 대비 0.2% 증가하는데 그쳤다. 올해 들어 1월 소매판매가 전월 대비 0.8% 증가했지만 지난해 동월 대비로는 3.4% 감소했다. 특히 건설경기가 부진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내수를 한층 위축시키고 있다.

실물경제의 주요 지표와 체감경기의 이 같은 괴리는 구조적 요인에서 기인한다. 높은 반도체 의존도가 수출과 내수 격차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실장은 "반도체 사이클에 맞춰 수출과 제조업 생산이 반등하고 있지만 체감경기는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수출과 생산이 중심인 실물경제의 주요 지표와 자영업자 상황이 크게 반영되는 체감경기 사이에는 상당한 틈새가 있을 수밖에 없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연체율이나 폐업률 외에는 자영업자의 현실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지표가 없다"고 말했다. 통계로 안 잡히는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고용시장에서는 청년층과 고령층의 엇갈린 흐름이 이어질 공산이 크다. 인구구조 변화로 고령층의 임시 직종이 늘어나고 있지만 청년들의 눈높이에 맞는 양질의 일자리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양질의 제조업 일자리가 줄다 보니 고용의 질이 좋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라며 "청년층이 원하는 일자리와 고용시장 사이에 ‘미스매치’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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